[한섬칼럼] 정치적 이견대립과 혐한류, 패션으로 허물다
[한섬칼럼] 정치적 이견대립과 혐한류, 패션으로 허물다
  • 이영희 기자 / yhlee@ktnews.com
  • 승인 2017.04.21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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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F/W 광저우패션위크의 마지막 밤인 지난 4월 13일. 폐막식을 겸한 중요한 엔딩 무대로 한국의 이상봉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준비돼 있었다. 광저우 GT랜드의 6층 500여석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다툼이 일어날 만큼 중국정부와 패션계 종사자, VIP가 참석해 폐막식을 장식할 이상봉 패션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초대형 멀티스크린에서는 이상봉 측이 준비한 패션쇼의 테마를 알리는 영상이 방영됐다. 그것은 바로 2018년 2월9일부터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장중하고 다이나믹한 주제음악이 울려퍼지면서 아름다운 평창의 겨울과 스피드 스케이팅, 스키 점프 등 장면 속에 환호하는 관중의 물결, 올림픽 깃발과 태극기가 스쳐갔다.

당초 사드배치로 인한 한중갈등과 경제보복 기류로 인해 한국디자이너들이 행사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지를 우려했던 가운데 이상봉 패션쇼 초입의 영상은 긴장감마저 불러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한국의 색동을 연상케하는 빨강과 파랑, 노랑 등의 원색과 경기복에서 모티브를 따 디자인한 의상들이 런웨이를 장식했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부합하는 한국적인 색상과 실루엣, 컨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 전략적 모티브 등 의상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상봉의 트레이드 마크를 재차 각인시켰다. 여기에다 눈을 맞은 듯한 하얀눈썹, 스키마스크를 한 모델들의 메이크업과 연출부터 스타킹, 슈즈 등 발끝까지 완벽을 기한 패션쇼는 참석자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중국 패션피플들은 쉴 새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을 했고 잠시 한눈 팔 틈도 없이 신명나는 한판 승부의 경기 같은 패션쇼의 피날레가 다가왔다.

무대인사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의 의상은 더욱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나된 열정’ ‘PASSION CONNECTED’ ‘융위일체적열정(融蔿一體的熱情)’이라고 프린트된 흰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물론 큰 박수갈채와 함께 패션쇼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공동의 관심사인 스포츠, 또 한국과 중국이 서로 닮아있는 열정의 빨강색, 그리고 열정으로 하나 될 수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는 일순간 모든 분란을 종식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불러오게 했다.

‘융위일체적열정(融蔿一體的熱情)’
하나된 열정, 평창올림픽 테마로
이상봉 디자이너 광저우패션쇼 성황
이념, 갈등 떠나 패션으로 축제연출
한명의 디자이너가 국격을 높이다

패션쇼 전날 늦은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의 리허설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의 극도의 예민함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언젠가 뉴욕에서의 패션쇼 앤딩에서 안중근의사의 단지동맹 손인장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 나왔으며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이기도 하지만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임을 강조했다. 그의 패션쇼는 정신적이든, 문화유산이든 언제나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계가 공감하게 하는 일련의 기꺼운 고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저우패션위크는 세계 각 국가에서 117명의 디자이너가 8박9일 동안 전시를 하고 패션쇼를 통해 오더를 수주하는 행사로 한국에서는 40여 브랜드가 참가했다. 광저우패션협회의 오랜 준비과정 속에서 사드배치 반대에 따른 혐한류의 분위기는 당초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주최측과 한국디자이너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개최 며칠전까지 불안한 기류는 계속됐다.

첫 회인 만큼 주최측의 막대한 투자와 준비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적인 면도 없지 않았으나 우려를 뒤엎고 한국디자이너 브랜드와 고감각, 고급 상품에 대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광저우패션협회의 리 지하이 회장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제품은 감도와 상업성을 동시에 갖췄으며 타국의 디자이너보다 미세하지만 우월한 차별성이 느껴진다”면서 “그 미세한 차별성이 결과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대를 모은다”고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긍정적 평가를 했다.

패션은 스토리이고 또 애국이다. 경기가 불투명할 때마다 ‘패션=사치’라는 애매한 몰매를 맞기도 했지만 한 명의 디자이너가 국격을 높이는 외교사절역할을 충분히 해 낼수 있음을 여실히 입증했다. 패션강국이 곧 진정한 문화, 경제대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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