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패션디자이너 꿈꾸는 ‘성공의 사다리’ 어디로 갔을까
[한섬칼럼] 패션디자이너 꿈꾸는 ‘성공의 사다리’ 어디로 갔을까
  • 정기창 기자 /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7.07.0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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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국내 패션 업계는 연초부터 열정페이 논란으로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2014년 10월 이상봉 디자이너실에서 일하던 견습생이 SNS에 올린 글을 계기로 시작된 열정페이 사태는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 대표로 알려진 배트맨D까지 가세하며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당시 우리 시대상을 반영한 사회적 약자라는 ‘억눌린 계층의 울분’을 불쏘시개로 열정페이 논란은 마른 벌판에 들불 번지듯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고 2015년 한 해를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약 2년여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보건대 ‘갑질’과 열정페이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큰 변화의 물결과 맞닿아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 기업과 사회가 이만한 비용을 감당 할만큼 성숙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이제는 이로 인한 공과(功過)를 한번쯤 논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얻은 것이 많다. 전술됐다시피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여는데 분명한 기여를 했고 시간외 근무 같은 불합리한 노동 관행을 개선하는 성과를 얻어 냈다. 지난 대선 당시 모 후보 측은 열정페이 개선을 공약으로까지 내걸었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 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인턴사원을 포함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달라졌고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근로자들도 자기 스스로 일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할 만큼 인권의식의 신장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잃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 5월 대학교수와 업계 디자이너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다른 분들은 열정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한다는 점에서 백 번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디자이너 업계 문제만 지나치게 확대·비약됐다는 생각이 든다. 패션과 디자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모 대학교수)

또 다른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일 이후) 학생들 인턴 보낼 곳이 없어 걱정이다.” 이야기는 그래도 필요한 일이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별다른 이견이 달리지 않았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갑질·열정페이’ 논란의 결과는
디자이너 자질을 학벌과 성적으로 판단
젊은이들 신분 상승 사회적 수단 잃어
꿈을 가진 동량 키워낼 대안 요구돼


이제 곧장 핵심으로 달려보자. 당사자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이상봉 디자이너는 열정페이 논란 이후 회사 시스템을 확 바꿨다. 한 개 층을 따로 내 하루 대부분 시간을 함께했던 컬렉션팀을 다른 팀들과 같은 공간으로 합쳤다. 그 전에는 견습·인턴 사원이 있어도 층이 달라 ‘누가·무슨 일을·어떻게’ 하는지 보지 못했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비정규직 없이 모두 정규직으로만 채용하고 견습 제도를 없앴다. 경력을 쌓기 위해 알음 알음 부탁해 오는 지인의 실습 청탁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견습사원을 뽑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입사서류를 꼼꼼히 본다. 이전에는 함께 일하는 견습 기간 동안 평가를 통해 직원을 채용했는데 이 제도가 없어지니 객관적으로 평가할 지표가 그것 밖에 없어진 것이다. 사실 그 전에는 고졸이건 대졸이건 상관없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정직원으로 전환했는데 서류에 의존하다 보니 스펙이 좋은 사람을 뽑게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끼’를 봤는데 이제는 교수 추천서를 받고 건강검진서도 꼼꼼히 챙긴다. 자연히 그 사람의 성실성은 출석일수 같은 종이로 판단하게 됐다.

업계는 학벌이 아닌 실력만으로 우수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막혀버렸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한 의류패션학과 교수는 “어떻게 보면 성공의 사다리가 없어진 셈”이라고 했다. 유명 디자이너실 경험은 디자이너 취업의 바로미터였다. 이전에는 ‘열정’이 있으면 눈칫밥이라도 먹으며 계층 상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는 원천적으로 이 사다리가 봉쇄됐다는 것이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견습이나 인턴 사원도 우리 식구라는 생각에, 현업에 들어오기 전 우리 디자이너들과 똑같이 일하며 현장을 느껴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법에 저촉되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사실 이상봉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가 열정페이 탓 때문만도 아니었다. 당시 그는 쏟아지는 인터뷰도 모두 거절하고 자기 방어에 손을 놓고 있었다. 그때는 상황이 그랬다.

지금에 와서 그의 무지와 실수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 속에서 디자이너 꿈을 가진 젊은 동량을 키워낼 성공의 사다리 하나가 없어졌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통계청 5월 고용동향을 보니 청년실업률이 9.3%를 기록했다. 실제 체감실업률은 22.9%에 이른다고 한다. 청년들이 꿈을 꾸고 성공의 사다리를 놓아 안정적 사회 진출을 할 수 있는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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