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2)] 코로나로 인해 패스트 패션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2)] 코로나로 인해 패스트 패션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20.05.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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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무시하고 매출에만 매달려 명품 가치 하락
11만 5000여 소매점 중 10% 폐업 예상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인명 피해가 4월들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에 내려졌던 통행 폐쇄령을 단계별 완화하기 위한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주까지 의료시설지원과 마스크 관련 소재와 봉제생산만 허용돼 왔다. 그러나 4월 27일부터 가장 시급한 경제분야로 고려되는 섬유, 디자인, 자동차 관련 산업의 생산라인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쥬세퍼 콘테 수상

5월 4일부터는 폐쇄령이 완화돼 같은 주 내에서의 이동이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의류 판매점은 5월 18일부터는 의류 판매점 영업도 가능할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요식업이나 미용실 같이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힘든 것으로 분류되는 업종은 6월초까지 오픈이 미뤄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1500억 유로, 한화로 199조가 넘는 추경예산으로 건설현장 재개, 의료시설 강화, 투자 증대 등 다양한 분야를 활성화해 자국내 피해를 완화할 대책을 세우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최근 이탈리아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다시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위한 예산 법령이 곧 발표될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판매량이 급감한 의류, 신발, 침구류 등 판매업종 약 31만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오던 11만5000여 소매점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중 10%가량이 폐업과 실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 대기 상태에 놓였던 SS2020 신상품은 출시도 되지 못한 채 재고 상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은 단순히 이탈리아만의 상황은 아니다.

패션브랜드들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새 시즌을 준비하는 동시에 관련 업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급부상한 브랜드 이미지와 높은 매출로 큰 관심을 모아온 구찌(GUCCI)는 코로나19로 인한 폐쇄 한달 반만에 지난 4월 20일부터 피렌체에 있는 프로토타입 작업실 아트랍 오픈을 강행했다.

이는 3월 중순 이후부터 상의해 오던 노동조합과의 합의 이후 이탈리아 패션협회와 노동협회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이렇게 해서 평소 인원의 10%에 해당하는 약 100명의 직원이 안전에 필요한 예방수칙을 지키며 다음 시즌의 샘플링 작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구찌의 이런 결정은 최소한의 생산라인 개방이 늦춰질 경우 브랜드의 중요한 메리트인 ‘메이드 인 이탈리아’ 토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구찌는 이탈리아의 대기업 생산라인이 최소 50%의 인력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재가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제냐(Zegna), 아뇨나(Agnona), 톰 브라운(Thorm Browne)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 제냐그룹의 대표이사 질도 제냐(Gildo Zegna)도 구찌와 마찬가지로 4월 20일경부터 섬유와 의류 생산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정부 보조금으로 기업이 각각의 직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4월 WWD(Women’s Wear Daily)에 실린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한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최대 패션하우스 중 하나로 세계 60여개국에서 2700여 매장을 통해 15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약 50%에 가까운 매출하락 통계를 보며 지난 한달 동안 반성의 순간을 경험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가 판단하는 명품 패션의 쇠퇴 원인은 2000년대초 큰 붐을 일으킨 패스트 패션 사이클 운영 방식 도입에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브랜드들이 매출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프리 컬렉션이나 크루즈 컬렉션 방식은 사실상 디자이너가 가진 창의력을 무시하고 아이템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디자인한 자켓이 3주만에 쇼윈도에서 사라지는 것을 부도덕한 비즈니스 방식으로 치부했고 그때 그때 소비자 욕구를 재빨리 충족시켜야 하는 백화점 시스템이 이런 결과를 낳은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아르마니 전략팀은 오랜 고심 끝에 SS2020 컬렉션이 9월 초까지 샵에서 판매될 것으로 결정했다며 이번 고비가 그동안 패션계에 쌓여왔던 거품을 빼고 매 시즌마다 발표되는 컬렉션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패션계에서도 서로 갈등을 빚어왔던 메가 이벤트, 컬렉션 자체의 가치가 아닌 눈에 띄는 특이한 스토리 텔링만으로 쌓아 올린 브랜드 이미지, 쇼를 위해 상상 이상으로 허비되는 모든 불필요한 부분을 버리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H&M은 최근 밀라노의 2개 매장을 포함해 이탈리아에서 총 8개 매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 뉴스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계획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최근 더욱 뚜렷해진 패스트 패션의 하향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아르마니 주장처럼 코로나 사태 이후에 있을 의류산업 시스템의 기본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일례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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