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8)] 伊 최초 슈퍼마켓 시작된 레글러 가문의 면화공장 마을
[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8)] 伊 최초 슈퍼마켓 시작된 레글러 가문의 면화공장 마을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20.08.2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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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폰테 산 피에트로에 면화공장 건설
산업 쇠퇴하면서 대규모 설비, 부지만 남아…
2015년 웹 호스팅 기업 아루바가 인수,
이탈리아 최대 데이터 센터로 탈바꿈

지난 연재에 이어 이탈리아 산업의 부흥과 쇠퇴속에서 발생한 산업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고 한다. 의류와 직물 산업이 크게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산업체들의 역사와 이야깃거리는 끝없이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이름의 기업들은 대부분 1800년대 중, 후반에 시작해 1970년대를 전후로 쇠퇴기를 겪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동부 유럽으로 생산라인을 이동한 것이 현실이다.

레글러 마을 모습
레글러 마을 모습

그런 이유로 쓸모 없게 된 공장부지와 대규모 생산시설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변함없이 수십년 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매각되거나 철거된 경우도 많지만 어마하게 큰 규모의 시설을 인수하거나 재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크레스피 다다 근로자 마을의 경우 마을을 포함한 산업시설의 성격과 특별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다수는 폐건물이 되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아지트가 되었거나 동네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

레글러 전경
레글러 전경

그러나 몇몇 경우는 그 자리에 사라진 대기업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재단이 설립되거나 그들이 남긴 여러 형태의 유산을 통해 과거에 내려진 간판의 가치를 지역 사람들이 기억하고 인정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코트니피쵸 레글러(Cotonificio Legler)의 부지는 베르가모 지역의 수자력이 풍부한 브렘보강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근로자들의 생활공간을 관리함과 동시에 통제했던 크레스피 다다와 달리 1900년대 초부터 근로자들을 생각했던 현대적 발상 덕분에 그 이름이 아직 남아있는 계기가 됐다.

레글러의 현대식 슈퍼마켓
레글러의 현대식 슈퍼마켓

원래 스위스 출신인 레글러 가족은 1875년 베르가모 인근의 폰테 산 피에트로(Ponte San Pietro) 지역에 면화공장을 건설했다. 이 시기 스위스 섬유산업은 불황 중이었고 스위스의 풍족한 자금과 이탈리아의 자연, 인적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베르가모 인근에서 면 생산이 활성화됐다.

1877년 생산활동을 시작한 레글러는 1890년대에 공장 시설이 확대되면서 근로자가 1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코트니피쵸 레글러라는 정식 명칭을 갖기 전부터 근로자 주택을 건설하고 마을에 스위스 학교를 설립하면서 1901년에는 레글러 소비자 협동조합 설립을 계획하게 됐다.

레글러 재단
레글러 재단

이 레글러 협동조합은 처음에는 식료품을 판매하는 소형 슈퍼마켓 형식으로 출발했다. 영국에서 접했던 셀프서비스 스타일의 상점 형태를 도입하면서 면화공장 직원과 조합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식을 기부해 폰테 산 피에트로에서 첫 가게를 오픈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레글러는 식료품을 유통해 도매가격으로 싸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발전하게 된 소비자 협동조합은 1960년대 이탈리아 최초의 슈퍼마켓 중 하나를 오픈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밀어닥쳤던 기업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1950년대 공장 부지 약도
1950년대 공장 부지 약도

이후 레글러 마켓은 롬바르디아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의 슈퍼마켓 문화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그러나 국제적 슈퍼체인이 급속히 도입됨에 따라 레글러 소비자 협동조합의 규모는 1980년대에 비해 현재 많이 축소됐다.

반면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레글러는 고품질 완제품 방향으로 생산범위를 다양화하고 지방시, 피에르가르뎅, 카푸치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정도로 국제적인 입지 다지기에 총력을 다했다. 1970년대를 지나며 시장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데님 생산 등 여러 변화를 시도했지만 1980년대 당시 한화로 2700억원의 부채를 지면서 결국 1991년 폴리그룹에 매각됐다.

1994년 섬유업체를 매각한 프레디 레글러(Fredy Legler)는 가족의 대를 이은 사업체의 역사적 의미를 남기기 위해 ‘레글러 파운데이션(La Fondazione Famiglia Legler)’을 설립했다. 이후 2011년 레글러 가족은 기업의 중요한 문서, 사진과 직물 등을 재단에 기부해 업계 종사자나 연구원, 학생들을 위한 자료를 제공했다.

2015년 이탈리안 웹 호스팅 회사인 아루바(ARUBA)가 나머지 레글러 공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20세기의 면직 생산 공장은 21세기의 이탈리아 최대 데이터 센터로 탈바꿈했다. 아루바는 레글러가 담당했던 지역사회 경제 주체로서 활동과 사회적 관계 등에 있어 큰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내비쳤다.

폰테 산 피에트로의 4인 가족 중 한 명은 레글러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는 당시의 자료가 있었다. 레글러 소비자 조합이 출발하게 되었던 것도 대기업이 가졌던 지역사회의 삶을 고려할 줄 안 기업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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