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집] ■ 일일 봉제 체험 - 봉제현장, 지루할 틈새가 없다
[창간 30주년 특집] ■ 일일 봉제 체험 - 봉제현장, 지루할 틈새가 없다
  • 서현일 / hiseo@ktnews.com
  • 승인 2011.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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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혹은 20년 이상 국내 봉제업계 현실을 대변하고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손놀림은 기계 그 이상이다. 특별한 말 없이도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자동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가 떠오른다. 봉제야말로 기술 집약 산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들이 지켜오고 만들어가는 봉제현장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봉제공장이 밀집한 중랑구와 동대문 소재 봉제업체에서 일일근무를 체험해봤다.

# 현장 첫 방문

아침 9시. 여느 업체들과 같이 대부분의 봉제공장이 작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직원의 70% 이상이 40대, 50대 이상 주부들로 이뤄졌기 때문인지 전날의 일일드라마나 방송 프로그램 등이 하루 작업을 시작하는 주요 화제가 된다.

30대나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직원들은 정부가 업체들에 소개하는 새터민 혹은 장애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은 봉제작업을 수행하는 데 의사소통 외에 아무런 불편도 없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다.

업체 사장의 소개로 현장에 첫 발을 들이자 재봉기에 실을 고쳐 매던 50대 기술자가 기자에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라 답하자 여기저기에서 “한참 만에 ‘젊은 총각’이랑 일하게 됐다”고 반기는 소리가 들린다.

업체 사장이 “얼마만에 보는 젊은 일꾼인지 모르겠다”며 “특별제작해서 현수막이라도 걸어야할 판”이라고 덧붙이자 작업장은 일순간 북새통 시장과도 같은 웃음과 활기로 가득 찼다.

# 작업 시작

티셔츠 같은 라이트웨이트 봉제는 봄, 여름이 성수기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하루 안에 끝내야 할 작업량을 엄수해야한다. 어느 산업에 종사하든 근무량이 많으면 몸이 고된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티셔츠 봉제업체 관계자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비수기를 생각하면 현재 바쁘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다”며 “가을 일거리가 없어 여름 이후 1, 2개월간 휴식을 취하는 업체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 시기에는 지역 내 자산공사 등 단체복을 수주받기 위해 업체 간 눈치작전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오전에는 대개 하루 작업을 위한 기본 작업들이 수행되는데 티셔츠의 경우 원단 앞판과 뒷판을 연결하거나 주머니를 달기 위한 준비 등이 이뤄진다.

업체 내 혹은 외부의 재단 기술자들이 전날 마감까지 재단을 마쳐두면 이를 바탕으로 다음날 아침부터 재봉기가 돌아가는 것. 때문에 업체 관계자는 “막힘없이 작업이 수행되려면 그 전날부터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수다 떨지 말고 일해!”

비교적 젊어 보이는 직원이 재봉기를 돌리고 있어 대화를 시도했다. 자신을 새터민이라고 소개한 올해 38세 정경희 씨는 “북에서 결혼을 했지만 가족들과 헤어진 후 홀로 남한에 들어와 1년째 봉제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봉제인력의 고령화를 완화하고 새터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이들을 봉제현장에 소개, 일자리를 주선하고 있다. 정 씨도 “각종 식당일 등 많은 일을 경험해오다 공릉 복지관을 통해 이곳의 일자리를 주선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을 갓 시작했을 때 처음 듣는 용어가 많아 헤매기도 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며 “그래도 적응력이 빠른 편이라 주말에는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맥주도 한 잔씩 하는 등 일을 배우면서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과 북의 언어 차이도 차이지만 ‘랍빠’, ‘삼봉’, ‘닥고’ 등 봉제현장에서 쓰이는 단어들은 처음 들었을 때 어느 나라 말인지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에 집중하고 있는 직원들에 참견하다 현장 작업반장에게 “수다 떨면서 직원들 일 방해하러 왔냐”는 핀잔을 듣고 운반 중 잠시 내려놨던 원단을 다시 들었다. 주변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 점심시간

식사가 배달되고 직원들이 둘러앉았다. 청각장애인 직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그는 입을 열지 않고도 화제의 중심에 서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반찬을 가리키고 손을 흔들면서 “오늘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오후에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제안도 한다.

말이 정확하게 통하지 않아서 불편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 상황에서 “그럼 아이스크림은 잘 안 들리는 총각이 사라”면서 웃음이 터진다. 또 다른 청각장애인 여직원은 덥수룩한 업체 사장의 수염을 가리키고 주먹을 들면서 “면도를 하지 않아 지저분하다”고 혼을 낸다. 기자도 재빨리 입과 턱 주변을 더듬어본 후 고개를 숙인 채 식사에 집중한다.

식사 후에는 직원들끼리 간단하게 탁구를 치면서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는 친한 직원들끼리 여행을 계획하거나 실력이 엇비슷한 남자직원들끼리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펼치기도 한다.

# 사회적 약자 계층 삶의 기반

우진어패럴은 동대문 창신동에 위치한 봉제업체. 청각장애인 4명, 지체장애인 2명, 지적장애인 1명 등 총 7명의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 업체 장종문 사장은 “지역구청 복지과와 서부, 북부 장애인센터 등으로부터 장애 인력을 소개받고 있다”며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교육을 통해 단순직과 기술직 등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봉제업계는 젊은 국내 인력 유입이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젊은 장애 인력의 봉제업계 유입은 서로 간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장 사장은 “청각장애인은 언어에만 약하고 지적장애인은 이해가 조금 느릴 뿐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노동력을 갖고 있다”며 “오히려 봉제현장의 재봉기 등 각종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일에 더 집중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우진어패럴은 현재 신당동에 짓고 있는 동대문첨단의류기술센터의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공간만 확보 된다면 인력과 일감은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부부끼리 영세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곳도 많고 장애 인력도 얼마든지 투입 가능하다”며 “인력과 입지적인 부분만 해결되면 일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 마감까지


‘드르르륵’ 하는 재봉기 소리와 함께 오후 작업이 시작됐다. 착착 이뤄지는 작업 진행은 식사와 휴식시간을 통해 탄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올해 경력 25년이 넘은 60대 기술자에게 힘들지 않은지 묻자 “계속해서 해오던 일을 놓고 집에서 쉬면 오히려 몸이 아파 병이 난다”는 답이 돌아온다. <삼국지>에서 잠시 휴가를 권하던 조조에게 관우가 답한 말과 같다. 국내 봉제업계를 25년간 지켜온 전문 기술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과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원단 뒤처리에 집중하고 있던 기자에게 한 직원이 불쑥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청각장애인 직원이 점심시간 약속을 지킨 것. 그는 직원들에게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잠시 동안의 휴식시간도 제공했다.

이후 재개된 작업, 평균 20년을 넘는 경력의 기술자들이 하나, 둘씩 “심심한데 라디오나 켜보라”고 독촉하기 시작한다. 업계에서 청년 취급을 받는 18년 경력의 40대 초반 실장은 “듣고 싶으면 직접 와서 켜도 될 것을 굳이 시켜 먹는다”고 투덜대면서도 곧 라디오로 손을 뻗친다. 봉제 전문가들은 귀로는 라디오를 듣고 눈으로는 재봉기를 보면서 입으로는 말한다. 또 온몸으로 웃으면서 발로는 페달을 밟고 손으로 원단을 민다. 하루 근무가 끝날 때까지 지루할 틈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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