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집] 수출보국, 산업근대화 역동의 세월
[창간 30주년 특집] 수출보국, 산업근대화 역동의 세월
  • 정기창 기자 /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1.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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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섬유산업 발전과 더불어 온 30년 한국섬유신문 史(上) : 1979~1995년

1. 1979년 ‘섬유공업근대화촉진법’
한국섬유신문 창간 약 2년 전인 1979년 9월24일 당시 경제각의(經濟閣議)는 ‘섬유공업근대화촉진법’ 제정을 의결하고 12월28일 발효시켰다. 이 법안은 섬유공업 근대화를 촉진함으로써 섬유제품 등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함과 아울러 균형 있는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목표(제1조)로 제정됐다.

또 동 법안은 제17조에 따라 근대화 기금을 조성, 현재의 한국섬유산업연합회를 출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근대화 기금은 노후설비 개체 보완, 생산규모 적정화, 기술개발 및 제품 고급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70년대 섬유산업은 10년간 부가가치 생산액이 6.5배 증가하고 수출액은 13배 성장해 전체 수출 비중의 30% 이상을 점유한 국가 기간산업이었다. 그러나 70년대 말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다자간 섬유협정(MFA)을 중심으로 개도국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후발국들의 섬유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양적 성장에 한계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경영환경 악화와 임금 및 원자재 상승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약화 등의 여건 변화가 ‘섬유공업근대화촉진법’을 제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 1981년 7월22일 한국섬유신문 창간

한국섬유신문은 ‘섬유산업 입국의 길잡이’, ‘무역정보 제공의 교량역(橋樑役)’, ‘패션산업 개발의 선봉자’를 모토로 창간됐다.

주간섬유(週刊纖維) 제호로 발행된 지령 1호는 장기불황 속에 하반기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을 반영, ‘섬유산업 큰 시련 예상’을 톱 기사로 올렸다. 이어 당시 박용도 상공부 섬유공업국장, 박진식 섬산련 사무총장 및 송석규 한양대 섬유공학과 교수가 참여한 가운데 ‘섬유산업 장기화 유도(를) 위한 공동대담’을 실었다.

창간 1호에는 한국섬유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의 광고가 다수 실려 있다. ‘토프론의 화음’(주식회사 토프론), ‘아메리카의 정통샤쓰 패션 맨하탄 샤쓰’(원미섬유공업주식회사, 효성그룹), ‘울 엄마 예쁜 엄마, 우리나라 좋은 나라’(코오롱그룹) 등의 타이틀은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1981년 9월2일자는 1면 톱 기사로 제5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이 끝나는 86년 섬유류 수출목표를 당초보다 14억 달러 늘린 124억 달러로 증액 조정한다는 기사를 올렸다. 같은 해 전체 수출 목표는 530억 달러였으니 당시 섬유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23.4%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3. 1983년 섬유제품 수출 100대 기업

80년대에는 현재 그룹사로 발돋움한 대기업들이 섬유산업을 주름잡았다. 83년 1월12일자는 섬유제품 수출 100대 기업을 선정했다. 1위는 전년도 수출 4억9000만 달러를 기록한 대우였다. 2위와 3위는 각각 삼성물산(3억9500만 달러)과 선경(1억2450만 달러)이었다.

코오롱상사가 4위였고 10위권 내에는 한일합섬, 국제상사, 효성물산 등이 포진했다. 100위에 턱걸이 한 삼원트레이딩은 488만 달러를 기록, 지금으로 보면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4. 1986년 7월1일 상공부 공업발전법 시행령 발표

산업발전의 주체를 정부에서 민간 중심으로 자율과 경쟁을 도모해 개방화 시대로 가기 위한 법안이다. 즉 규제에서 개방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섬유를 비롯 조선, 철강,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 산업의 공업특별법을 폐지하고 공업발전법으로 통합 시행함으로써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민간 주도 발전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공업발전법 제5조에 의거 자주적인 민간 힘으로 효율적인 국제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부분은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 정부가 규제 및 지원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특히 섬유산업에서는 직물제조업이 첫 번째로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여기에는 당시 상공부 직물계장으로 일하던 섬산련 배승진 상무의 후일담이 회자된다. 이어 봉제, 염색 가공 시설 개체 등에 대해서도 합리화 자금이 지원돼 섬유 업종은 이후 3년간 총 1800억 원의 합리화 자금을 지원 받았다.

당시 직물업계는 이 자금으로 자동화 직기 설비를 도입하면서 세계 경기 호전과 맞물려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호황기를 맞았다.

1986년 5월14일자 주간섬유는 ‘시설 근대화 자금 금주내 배정’, ‘섬유, 산업 합리화 업종 거의 지정될 듯’ 기사들을 1면 톱기사로 올리며 당시 분위기를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중략)…금년도 섬유공업시설근대화 자금 105억 원에 대한 실수요업계의 배정을 금주내 완료키로 하고 방모방과 제직, 편직, 연사, 봉제, 염색, 섬유 부자재 등 7개 업종의 섬유상사별 심사작업에 착수했다.’

이어 6월4일자는 대기업을 완전 배제하고 105억 원 전액을 중소기업에 할당한다는 내용의 섬유 시설 근대화 자금 배정 완료를 알렸다.

같은 해 7월16일자는 1년 전 화마가 덮친 부산 공장을 재건하는 태광산업의 재기 스토리를 심층취재 형식으로 보도했다. 85년 4월28일 누전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화재로 일부 공정을 제외한 전 설비와 건물을 소실했던 태광산업 부산 공장은 200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었고 이는 몇 안 되는 대형 화재로 기록됐다. 그러나 당시 이임용 회장은 제2의 창업의지로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해 짧은 시간내 설비를 복구하고 오히려 국제적 최신 설비를 갖춰 응축된 집념의 혼을 보여줬다.

5. 1987년 섬유산업 육성 5개년 계획 후속조치 및 섬유의 날 제정
1987년에는 연초부터 당시 엄청난 섬유산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과당 경쟁 우려(1월21일자 ‘對日, 소나기 섬유 수출 우려’)와 국내 섬유업체 도산(1월28일자 ‘외의류 업계 연쇄 부도 사태 심각’) 등 어두운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따르면 방림방적 성남 새마을 공장을 인수한 ‘대양(大洋)’이 외환은행 여의도 지점에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고 효성과 거래하던 ‘내일산업(來日産業)’, 자켓 전문업체인 동성인터내셔날이 도산한 내용을 실었다. 원부자재와 하청 공임 파동, 원화 절상 등 요인이 겹쳐 약 2개월 사이 20여 개가 넘는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2000년 섬유수출 25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당시 상공부 섬유산업 육성 5개년 계획 후속조치 기사도 눈에 띈다. 3월4일자에 따르면 상공부는 세계인구 증가율에 따른 수요 증가와 고급화 정책을 추진해 2000년 250억 달러 수출을 달성, 섬유수출 세계 1위권에 진입시킨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러나 13년 후 실제 섬유류 수출은 사양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쇠퇴를 거듭, 2000년 184억3164만 달러 실적에 그쳤다.

87년은 우리나라 섬유류 수출이 11월11일을 기해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한 해이다. 섬유의 날이 제정된 계기가 됐다. 기념 행사는 11월30일이 수출의 날인 점을 감안해 12월8일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섬유산업 발전에 공헌한 업계 인사 20여 명이 철탑훈장 및 산업훈장을 받았고 20여 명은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본지는 80만 섬유인들의 정보 욕구 충족과 정보의 다양화를 위해 11월16일자로 주 1회에서 주 2회, 24면 발행체제로 바뀌었다.

6. 1988년 섬유산업 처음으로 수출 1위 자리를 내주다

상반기 실적으로만 보면 처음으로 섬유류 수출이 전자 제품 수출에 밀린 해다. 지금으로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지령 400호 8월4일자는 섬유류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수출 부문 1위 자리를 타 산업에 내줬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 들였다.

같은 해 상반기 섬유류 수출은 63억1717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9% 증가했다. 88년 상반기부터 섬유류 실적에서 제외된 직물제 가방 2억5000만 달러를 포함하더라도 전자 부문에 비해 3억 달러의 격차가 벌어졌다. 본지는 이를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생산 원가 상승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88년에는 우리업체들이 값싼 임금을 찾아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해외로 진출하는 움직임이 연달아 포착됐다. 4월14일자는 봉제수출업계가 대단위 자체 공장을 문닫고 해외 기지로 생산 설비를 이전하는 기사를 다뤘다. 환율 폭등과 임금 인상의 요인으로 채산성이 떨어져 앞으로 해외 기지 이전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전망을 실었다. 이어 25일자는 ‘美 현지공장 설립 크게 늘 듯’이라는 기사를 통해 중남미와 동남아 등지에 40여 개 업체가 진출했고 이후 서통과 군자실업, 신원통상 등 중견 기업들의 탈한(脫韓)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

7. 1991년 섬유공업발전기금 운용

정부는 91년도 공업발전기금관리 요령에 의거 4월9일자로 섬유분야 세부 운영지침을 확정 공고했다. 분야별로 직물제조업분야 200억 원, 편직·봉제·염색가공 50억 원, 섬유신소재 및 신기술 개발에 15억 원 등 총 262억 원을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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