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 ‘봉제가 살아야 패션도 산다’
[창간 31주년 특집] ‘봉제가 살아야 패션도 산다’
  • 정기창 기자 /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2.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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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보고 투자한 회사들, 어떻게 살릴건가”
정확한 제도 운용과 현장 위주 지원책 절실

지난 10일,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봉제기업 아름다운사람의 김창환 대표는 기업은행 독산중앙점에서 9억 원 대출을 놓고 지점 관계자들과 아침부터 언성을 높여 싸웠다. 이날은 이 회사 직원들 급여일이었고 다행히 당일 대출이 나와 직원들 월급은 밀리지 않았다.

김창환 대표는 “담보를 제공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출 과정이 여의치 않아 애를 먹었다. 우리 같은 회사도 이렇게 힘드는데 이보다 못한 회사들은 어떻겠냐”며 “도대체 어떻게 국내 봉제 기반을 살릴 거냐”고 하소연했다.

이 회사는 생산직 인원이 200여 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신사복 봉제 기업이다. 김 대표는 작년까지 3년간 기계 교체 및 배관 설비 보강, 장애인 시설 확충을 위한 건물 리모델링 등에 무려 17억 원을 쏟아 부어 해외 최신 봉제공장에 버금가는 훌륭한 설비를 갖췄다. 그러나 올들어 내수 시장 부진으로 납품 물량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2001년에는 인근에 신사복 공장이 20여 곳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우리 회사만 남았다”며 “당시 사람들은 다 망할 거라고들 했지만 봉제 산업의 미래를 보고 지금껏 투자하고 회사를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한·EU, 한·미 FTA를 계기로 국내 봉제 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지금 이 상태로는 누구도 국내에 신규 공장을 짓거나 해외 공장을 국내로 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불만에 가득차 있다.

■ 수입 제품 관세, 제대로 부과
아름다운사람 김 대표는 현재의 관세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 달라고 주문한다. 그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인 의류 수입 관세는 13%에 이른다. 이들 제품에 대해 정확히 관세를 부과하면 적어도 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는 신사복은 충분히 국내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신명수 이사는 “통상 신사복 한 벌의 공임은 국내 3~4만 원, 해외는 2만 원 안팎인데 관세만 제대로 매기면 수입가가 비슷해져 우리 공장들도 살 수 있다”며 “90년대 초반까지는 현재 기아차보다 우리 연봉이 더 높았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 98년 IMF 당시의 임가공료 그대로 일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생산 규모를 막론하고 창신동, 보문동, 숭인동, 신당동 등 영세 봉제 공장 업주들이 주장하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창신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SSMG 차경남 대표는 “언더밸류(Under Value : 고율의 수입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원래 정상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송장(invoice)을 작성하는 것으로 불법)와 수량 속이기는 이미 일반화 돼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물건들은 고급 제품이 아닌 일반 서민들용 제품에 몰려 있어 피해 질의 정도가 아주 나쁘다”고 말한다.

세관 당국은 인력과 수입 의류에 대한 데이터 부족을 얘기하지만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수년전 언더밸류가 난무하는 동대문산 의류에 적정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세관 직원을 파견, 수입 의류에 대한 과표 표준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동대문 클러스터 연구소 신용남 소장은 “일본 세관은 이를 통해 덕다운, 여성정장, 니트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의 동대문 실제 가격을 조사하고 제일 하단에 위치한 의류 품목을 기준으로 미니멈 관세를 책정함으로써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최대 10배까지 수입가를 낮추는 언더밸류가 횡행하고 있어 가장 낮은 의류 가격을 기준으로 해도 실질적인 수입 억제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및 브랜드사 인식 변화 병행
봉제 공장을 단순한 하청공장으로만 보는 업계 관행도 문제다. 영세 상인들에게 불리한 카드 수수료율을 재조정하고 재래상권 보호를 위해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주말 영업을 금지하는 등 경제 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장치가 마련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봉제 업계에서는 이런 조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김창환 대표는 “패션업계가 봉제 업체를 상생의 관계가 아닌 하청공장으로만 본다”며 “대부분 대기업들은 에이전트를 끼고 중국산 의류 수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익의 추구가 기업 생존의 본질이지만 국내 봉제 생산 기반을 도외시하고는 패션 산업의 발전, 나아가 섬유산업의 부흥을 꾀할 수 없다.

차경남 사장은 “패션만 강조하다 보니 근간을 이루는 봉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소외돼 왔다. 공장이 없는데 디자이너들만 잔뜩 양성하면 이들은 어디서 일하고 어떻게 섬유산업 발전의 균형을 꾀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대기업들이 상생의 묘를 발휘해 손해를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 수량은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인력문제, 해법은?
아름다운사람은 전체 200여 명 직원 중 약 44%가 장애인이다. 회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청각, 정신 및 신체 지체 등 장애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일반 직원들과 똑같은 급여와 대우를 받고 있어 한번 들어오면 이직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평균 5년 이상 근속이며 12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도 많다.

동대문구 창신동 우진어패럴은 12명 중 7명이 청각장애인이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공장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은 미미한 편이다. 우진어패럴 장종문 대표는 “장애인들은 일반인보다 많은 1.5배의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지원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봉제 공장들은 장애인 및 서민층 주부, 탈북자 인력 등 활용이 일상화 돼 있어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계층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중랑패션지원센터 김병희 센터장은 “자체 예산과 정부 지원을 받아 평일 집에서 쉬는 주부들을 훈련시켜 봉제 공장에 취업시키면 지역 경제활성화와 봉제 인력난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다”며 “내년에는 관련 예산을 반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제 공장은 대기업과 달리 동네 사람을 쓰기 때문에 실제 그 지역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므로 이들이 번 돈은 모두 지역 사회로 환원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지역 발전 모델로 평가 받는다.

취약계층 사회적 안전망 역할하는 봉제 공장
이전에는 외국인 근로자 제도도 산업 특성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과 같은 최저 임금을 보장 받고 있어 생산비용 절감보다는 안정적 생산 인력 확보 차원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러나 인력 배정 받기가 어렵고 설령 배정을 받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야하므로 숙련공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제도는 올 7월2일부터 개정 시행되는 ‘성실 외국인 근로자의 재입국 취업우대, 사업장 변경 제도 보완’으로 어느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르면 4년 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 없이 성실 근로후 자진 귀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3개월 후 재입국이 가능하게 됐다. 이 제도 적용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는 재입국 취업을 위해 한국어시험에 응시할 필요가 없고 입국 전·후의 취업 교육이 면제되며 3개월 후 재입국하면 종전 사업장에서 근무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는 초창기에는 저임금이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숙사 운영 등의 문제로 내국인보다 더 비싸다”며 “새로 적용되는 제도로 외국인 인력을 쓰는데 어느정도 숨통이 트였는데 앞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운영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있다. 대부분 봉제 공장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부부간 근로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이중 1명은 산재나 고용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이서용 과장은 “아직 부부간 근로관계는 인정 안되지만 자녀나 사위는 실제 근무하는게 입증될 경우 근로관계가 인정돼 각종 혜택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세 봉제 공장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기숙사 문제, 고용 인력에 따라 차등 적용받는 혜택의 유연한 운용 등의 사항은 해결해야할 사안으로 남아 있다.

■ 권익 보호할 수 있는 자구책 필요
그렇다면 왜 이런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국내 봉제 업계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 봉제공장은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기능직을 제외하고는 우수한 인력을 갖출 여력을 갖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 열악한 봉제 공장 특성상 어떤 경로를 통해 무슨 정책을 건의할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이는 정부에서도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지난 11일 열린 ‘소공인 특화지원 시범사업’ 간담회장. 행사를 주관한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정책국 강시우 국장은 “소상인에 대한 정부 지원은 많았지만 소공인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며 “이는 관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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