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한국 현대 미술史 큰 획 긋는 ‘제 4 집단’ 탄생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한국 현대 미술史 큰 획 긋는 ‘제 4 집단’ 탄생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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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의상실A.D에 모인 예술가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선진문화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들뜬 젊은이들은 철학, 문화, 예술에 대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녀오지도 않은 ‘파리’의 문화와 철학, 예술가들과 사상에 대해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다. 다 방면의 젊은이들이 모이다 보니 장르불문 ‘새로운 느낌’을 창출하고자 하는 행위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손일광, 정찬승, 정강자, 김구림, 방태수(방거지)를 주축으로 마침내 ‘제 4 집단’이 결성됐다. ‘제 4 집단’은 ‘남들과는 다른 4차원의 생각을 가진 이들의 모임’을 의미했다. 주축 멤버중 가장 이론적으로 무장이 잘 돼 있는 방거지가 작명을 했다. 여기서 잠깐, 일명 방거지로 불리운 방태수는 한국에서 최초로 판토마임 극단 ‘에저또(대화중 에...저...또... 라는 말투에서 따온 극단명)’를 창단했고 판토마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현재는 디지털 서울문화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거지는 평상시 잘 씻지 않은 탓에 지인들이 붙인 애칭(?)이다. 항상 군복을 물들인 작업복을 입었고 씻지 않았던 방거지에게 손일광은 ‘칫솔 질이라도 하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이에 방거지는 “정글의 맹수나 사자가 이 닦는 거 봤냐?”고 응수했단다.

4집단은 본부 임원 명칭도 있었다. 상징적 대표는 무령(무체사상), 실질대표인 통령은 김구림, 사무총장격인 총령은 정찬승, 대변인격인 포령은 방거지, 의장격인 의령은 손일광이었다. 이처럼 제 4집단은 기인(?)들의 모임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억압받는 시대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젊은 혈기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해 나중에는 100명에서 200명까지 늘어났다. 이때부터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서의 조사가 시작됐다.

‘사회규범에 도전하는 집단’이란 눈총을 받으며 날마다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김구림과 방거지는 ‘남산’에 갔다 온 화려한(?)경력을 갖게 됐고 손일광 선생은 중부경찰서에 가서 ‘주요인물카드’에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힌 다음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어 특별히 관리해야 할 대상자”로 분류됐다.

시대상 꼬집는 파격 해프닝 본격화
“산소부족으로 물고기가 수면위에 입을 내놓고 뻐끔거리는 것처럼 군사독재에서 젊은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던 시기였다”는 손일광 선생의 회고처럼 당시 홍대출신의 예술가들은 행위예술로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한대수가 민주화를 대변하는 가수로 추앙받던 시절이었다. 이때 음악을 공부하러 베를린에 유학을 간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편지 왕래가 시작됐다. 어느날 백남준이 보내 온 한 장의 편지가 ‘손일광’을 바꿔 놓았다.

백남준은 “ 내 감정은 오선지 안에 가둬 둘 수 없습니다...”로 시작한 편지는 자신의 감정을 오선지위에 악보가 아닌 그래프로 그려 둠으로써 사람의 사고는 틀에 넣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백남준의 편지는 손일광이 추구하던 정신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단숨에 날리고 확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제 4 집단의 활동이 본격화됐다. 명동 국립극장 앞에서 주민번호를 가슴에 새긴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한 바탕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인간 자체의 존엄성보다 번호로 구분돼 지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이때 판토마임을 하는 방거지가 주요 멤버로 활약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명동 한복판에서의 피아노연주 또한 ‘파격 행위예술’로 기록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는 남녀가 피아노위에서 성행위를 하면서 울려지는 것’이란 테마아래 명동 거리에서 행위예술 공연을 한 것이었다. 커튼을 치고 노출을 한 여성예술가가 피아노 위에서 몸으로 연주를 했고 당시 윤리의식으로서는 풍속을 해치는 ‘대단한 사건’이 됐다.

이러한 제 4집단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너무 많은 회원들이 모여드니 안기부에서 마침내 내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제 4집단은 일간신문과 잡지를 도배하다시피한 당대의 ‘대형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도 광복절인 8월 15일에 말이다. 일명 ‘개꼬리 장례식’으로 불린 이 퍼포먼스는 일본압제의 충복으로 꼬리를 흔들었던 이들이 주요관직에 앉아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식을 상징하는 꽃으로 장식한 관을 들고 사직공원을 출발, 한강까지 행진을 하기로 했다. 15일 오전 11시 사직공원의 율곡 이이선생 동상앞에서 정찬승(당시 29세)의 사회로 1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제4강령의 복창을 마치고 시내행진에 들어갔다.

김구림(당시 35세)은 백기를 들고 앞장서 출발했고 역시 백기와 태극기를 든 정강자(당시 29세)가 50미터 간격으로 뒤를 이었다. 그 뒤를 꽃과 태극기를 덮은 관이 뒤따랐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앞에 이르러 경찰에 연행되기에 이른다. 죄목(?)은 어처구니없게도 ‘통행방해’와 ‘도로교통법 위반’이었다고 한다. 제 4집단의 주요멤버들은 직결재판에 회부됐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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