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예술은 추상적 개념 아닌 실천, 주변 모든 것이 소재”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예술은 추상적 개념 아닌 실천, 주변 모든 것이 소재”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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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맨발로 명동 걷는 기인
훤칠한 외모로 여성고객 몰려들어
소재·패턴의 획일성 탈피 발상전환


낮에는 열심히 고객들을 맞이하고 밤이면 ‘제4집단’멤버들과 의상실 아방가르드(A.G)에 모여 예술을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일상이 됐다. 손일광 선생이 아끼는 제자이자 후배인 선우환(반석써치주식회사 대표)은 “손일광 선생님과 멤버들의 눈빛은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완연한 4차원의 눈빛이 바로 그러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손일광 선생은 어느날 기자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가급적 사생활(어떤 생활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은 가지만 본인이 확실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을 싣는 것은 피해줬으면 한다”고. 연재를 위해 인터뷰를 하러 나오는 손일광 선생을 향해 부인은 “신성일처럼 사생활을 팔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단다.

모든 것에 초연한 손일광 선생도 부인의 엄명에 대해선 순한(?) 복종을 마다않는 애처가임에 틀림이 없다. 고인이 되신 최경자 선생이 제자 손일광에 대해 “훤칠하고 잘 생긴 용모만큼이나 호탕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선후배간에도 사랑받고...”라고 언급했듯이 당시 명동에서 몇 안되는 남자 디자이너이면서 출중한 외모에 자상함까지 갖췄으니 의상실을 찾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기에는 충분하기보다 넘쳤을 것이다.

의상실에서 함께 했던 제자 선우환은 “여성 고객들이 모두 손 선생님만 쳐다보고 좋아했고 사이즈를 재는 동안 내내 어쩔 줄 몰라했다”고 당시 인기를 증명했다. 제자 선우환은 손일광을 스승으로 모시고 재단을 배웠다. 손일광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병창은 일러스트부문에서는 독보적 인물이었다. 홍대출신으로 순수 미술을 했던 유병창은 형편이 썩 좋지 않아 연세춘추 기자를 하면서 학교를 다녀 다른 이들보다 졸업이 늦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패션역사에 있어서 꼭 기억되는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스타일화의 영역을 만들고 정립을 한 이가 바로 유병창이다. 유병창은 “패션디자이너가 패턴을 모르면 건축하는 이가 설계를 못하는 것과 같다”며 선우환을 손일광에게 소개했다.

선우환 대표는 손일광, 정찬승, 유병창의 대화중 눈빛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안광(眼光)’을 느꼈다고 한다. 정찬승과 유병창은 독특함이 드러나고 가끔 예술가적인 거친 일면이 있었던 반면 손일광 선생은 다른이들의 말과 생각을 많이 경청하고 배려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어찌됐든 애처가인 손일광 선생의 간절한 당부와는 달리 선우환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고객에게 인기가 대단했고 유혹도 많았다”고 결론지어진다. 때론 노골적이고 당황스런 표현을 하는 고객이자 팬들이 있었다고 하니 당시 인기에 대한 증명은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전편에 잠깐 언급했지만 비가 오면 명동거리를 맨발로 걸어다닐 만큼 ‘일탈’이 ‘일상’이 된 디자이너 손일광이었지만 본분을 잊지 않고 고객에게 충실해 단골들이 많았다. 저녁 술자리가 끝나면 잠을 자기보다 의상실에서 작업을 하는 날이 많았다. 밤잠을 자지 않고 핸드프린트 실크 스카프를 만들고 고객들에게 선물했다.

의상에 맞게 코디할 수 있는 스카프를 직접 만들어 선물하면서 고객들의 호응도 높았다. 또한 직접 그림을 그려 핸드프린트한 실크 원단으로 의상을 디자인했고 잡지 표지 모델에게 입혀지곤 했다. 그렇게 본분에 충실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우리 고객들이 제 4집단의 술값을 내주는 소중한 분(?)”이었다나.

의상실에서 돈을 벌어 벗들과의 예술활동을 했던 시절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손일광은 기자에게 묻는다. “통장에 돈이 들어가 있는 것이 좋아요, 아님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을 갖는 것이 좋아요”라고.

손일광과 제4집단이 벌인 ‘해프닝’은 말 그대로 잠깐의 해프닝에 끝나지 않고 새로운 관념과 예술의 장르를 창조했다. 또한 예술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이며 주변 생활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각인 시켰다. 손일광은 늘 생각했다. 또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겨 예술로 승화시켰다.

종이, 장어가죽, 볏짚 등이 의상소재가 됐고 해운대 모래를 퍼와 접착시켜 옷을 만들기도 했다. 돈이 되는 ‘상업적’의상에 전념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도는 많은 이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얼마 전 손일광 선생을 만났을 때 “어제 갑자기 번뜩이는 생각이 있어 작품을 하나 완성했다”고 했다.

청평에 있는 손선생의 저택 거실에 들어선 순간 기자는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값비싼 오디오 대형스피커에 작품(?)을 그려 놓은 것이다. “보이죠? 눈 두 개, 귀 두 개...”너무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뿌듯해 하는 모습에서 선우환 대표가 말했던 바로 그 ‘4차원의 세계’를 확실하게 실감했다.

연재 중 소개했던 것처럼 오래전 음악공부를 하러갔던 백남준은 비디오아티스트로 또 다른 예술의 영역을 만들었고 사후에도 세계사에 남는 예술가가 됐다. TV라는 바보상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백남준 형(손일광 선생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과 오디오 스피커에 눈과 귀를 그려넣는 손일광의 공통점과 차이는 무엇일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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