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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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트쿠튀르 패션의 명품화 ‘40년 외길’ 고집

원단과 오랫동안 대화하는 특이한 버릇
‘소재·고객 장점’살려 최고의 디자인
후배들 소재개발, 중요성 간과해선 안 돼

이림과 평생 선후배로 지낸 한 지인은 오래전 그의 모습이 뇌리에 각인돼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앙드레김을 비롯, 당대의 디자이너들이 드나들던 원단도매시장에서 이림을 우연히 보게 됐다고 한다.

작은 키의 남성이 층층이 쌓여진 원단들을 오랫동안 서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너무 골몰해 있어 말을 걸기가 머쓱했다고 한다. “참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미동도 않고 오랫동안 원단을 쳐다보면서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호기심이 발동했죠. 언젠가 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림은 평생동안 ‘원단’과 대화를 하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림은 지금도 청담동 1층 이림스타일 샵에 원단을 세워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혹은 말(?)을 걸기도 한다. 이림은 “이 원단을 어떤 모습으로 디자인하면 좋을까? 소재의 특성을 잘 표현하면서 스타일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디자인 중점을 둔다.

“디자이너라면 소재의 특성을 100%이해해야 하고 디자인차별화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제는 독자적 소재를 개발해야 한국도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자에게 몇 번을 강조했다. 대부분 신진 디자이너들이 소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것에 대해서도 누누이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해외유명 브랜드중에는 하나의 소재를 개발, 적중하면서 세계화된 것이 많다. 후배디자이너들은 소재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림의 디자인 방식은 또한 독특하다. 고객들은 이림에게 디자인을 일임한다. 좋은 소재를 획득했을 때 좋은 기분을 이어가면서 고객의 특성에 맞춰 최고로 아름답게 보이고 장점이 부각될 수 있도록 ‘알아서’ 디자인하는 것이다. 일명 ‘묻지마’ 마케팅인 셈이다. 결과는 당연히 대만족이다.

그러니 고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은 그 만큼 디자이너 이림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떨 때는 이림자신이 특정고객을 떠 올리며 디자인하고 의상을 제작한 뒤에 “샵을 방문해 한번 입어보시라”고 권유하는데 대부분 만족해 한단다.

이림스타일 명동시대 열어
이림의 고객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고객의 2세들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대물림하기도 한다. 그 만큼 신뢰로 맺어진 고객들과의 에피소드와 스토리도 많다. 오늘날의 이림이 있기까지 고객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는데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함, 구김살없는 성품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하고 4~5년간 명의상실등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실력을 다진 이림은 마침내 명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상실을 열게 됐다.

이림스타일은 명동 에스콰이아 구두 옆 건물 3층에서 첫 걸음을 내 딛었다. 당시 가건물형태여서 여름엔 몹시 덥고 겨울엔 추워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좁은 계단을 고객들이 올라오고 샵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까지 옷을 맞춰갔다. 고객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중 F난로 사장 부인을 손꼽았다.

기업대표 부인이면서 대한부인협회 회장도 겸했던 그 고객은 감성적이고 인자했다. “회사에서 고사를 지내면 음식을 우리 공장으로 보내줘 직원들이 먹게 해 주고 추울때는 전기제품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이림은 회고한다. 어려운 시기에 한동안 공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그 고객 덕분임을 잊지 않고 있다.

의상실을 개업하던 날 그 부인은 딸을 보내 ‘봉투’를 전달하고 갔다. 나중에 열어보니 ‘에스콰이아 구두티켓’이 들어있었다. 퇴근 무렵 그 부인은 전화를 해 이림이 평생 잊지못할 말을 전했다. “새 구두를 신으면 조심조심 걷게 되죠? 또 윤이나게 닦게 된답니다. 이런 마음으로 새 구두를 신고 기분좋은 출발을 하기 바랍니다”라고.

아직도 이림은 처음 새 구두를 신고 조심조심 첫 발을 내딛는 초심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좁고 불편한 의상실에서의 시작이었지만 눈썰미 좋고 실력있는 이림에게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멋을 아는 여성고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명동에서의 이림스타일 전성기는 시작됐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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