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4.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오트쿠튀르 패션의 명품화 '40년 외길' 고집

명동 전성기는 ‘순수의 시대’
73년 첫 오트쿠튀르 샵 열어
예술과 패션,진정성 어우러져

패션의 메인은 의상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광범위하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패션의 범주에 속한다. 이림은 요즘 디자이너들은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공부도 필요하고 ‘예술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림이 명동에서 활동하던 시절 “디자이너는 옷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디자이너 이림은 남들보다 앞서갔다.

한때는 명동에서 ‘홈아트’를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샵처럼 식탁보와 도자기, 차 등을 함께 전시해 고객들의 호응이 높았다. 고객들의 호응도 있던터라 홍콩을 거점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파트너와 손잡고 오더량을 늘려갔는데 그의 말로는 “왕창 해먹고 날랐다”며 속없이 웃었다. “항상 즉흥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겼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었죠.”

이림은 예술가들과 친분이 두텁다. 그의 왕성한 호기심과 선천적으로 예술을 좋아하는 DNA를 가졌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자경 오페라 단장과의 만남으로 디자이너 이림은 무대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오’자도 몰랐어요. 당시엔 흔하게 구경할 수 있는 장르도 아니어서 미국대사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베르디의 히스토리부터 찾아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림은 이를 계기로 무대의상뿐만이 아니라 오페라에 대한 다양한 지식도 쌓게 됐다.

무대조명, 세트, 의상, 소도구 등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1막1장부터 스토리에 부합되는 무대 분위기와 기본 색상을 설정해 놓고 이에 어울리는 의상의 컬러와 소재를 논하고 디테일은 마지막 각자의 몫으로 작품화하는 과정이었다. 무대의상을 하면서 이림은 많은 것을 배웠다. 개개인의 사람이 갖는 분위기,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감각을 익혔다. 이림의 옷이 중심이 아니라 전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오페라를 완성하는 종합예술을 체험하게 된 계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여인극장의 단장 강유정씨도 이림에게 ‘트로이전쟁’의 의상을 부탁해 왔다. 이 작업 역시 이림은 극의 흐름과 무대연출, 연기자 개개인의 배역특성 등을 잘 파악해 작품을 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도록 해 줬다. 이림은 명동에서 문화, 예술인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해갈되지 않았던 지식에 대한 열정을 해소하게 됐고 오늘날까지 자양분이 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결국 무대의상작업은 길게 가지는 못했다. 예술인들은 가난했다. 작업하는 동안은 행복했지만 돈을 주지 않으니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있어 불필요한 경험은 없는 법이다. 이림은 이 과정이 옷을 입는 사람의 T.P.O와 분위기, 개성에 따라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의상을 짓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전편에서 언급됐듯이 명동의 명의상실등 직장생활 5년차만인 73년도 가을에 에스콰이아 본점 옆건물 3층에 샵을 오픈했다. 가건물이어서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모질게 추웠지만 용감하게 시작했다. 그동안 이림을 신뢰했던 고객들이 오히려 반겨주고 지원해 줬다. 1층도 아닌 3층의 샵, 좁은 계단을 올라와 몇시간씩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당시의 고객들은 멋도 알고 의리도 있었다. 2년을 운영하고 더 좋은 장소를 물색해 봄에 이사를 했다. 명동전성시대 ‘함지다방’은 유명인사들의 명소였다. 두 번째 샵은 함지다방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일이 끝나면 이림은 함지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주인 할머니는 이림을 항상 걱정해주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줬다. 이림에게는 그 따스한 정이 아직도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커피를 끓여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단다. “커피집은 커피를 최고로 끓이고 디자이너는 옷을 최고로 지어야겠구나” 젊은 이림은 주인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삶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하게됐다. 함지다방과 함께 ‘코지코너’란 곳은 학력도 높고 어느정도 연령대도 있는 소위 ‘커피맛’을 안다는 사람들의 명소가 됐다.

그 때는 단순했던 ‘순수의 시대’였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할때는 좋은 곳에 가서 예술가들이나 지인들과 차도 마시고 맥주를 마시면서 연주를 듣고 피곤함을 달래곤 했었다.
<다음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ktnews@ktnews.com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tnews@kt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