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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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트쿠튀르 패션의 명품화 '40년 외길' 고집

한 청년의 꿈은 ‘헌신’에서 자랐다
영화관서 이림을 무릎에 앉히고
짐 자전거에 싣고 소풍가 주신
선생님들 제자 사랑 잊지 못해

이림을 업고 시제에 가신 아버지

이림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엄격한 분이셨다.
먼길을 다녀 오시면 꼭 ‘생과자’를 사다 주셨다.
이림의 원래 이름은 이생림(李生林)이었다. 어릴때부터 몸이 아프다보니 주변에 역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바꿀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마침내 생(生)자를 빼고 ‘이림’으로 개명을 하기에 이른다. 늘 이림을 업고 다니셨던 어머니처럼 아버지 역시 그러하셨다. 이림의 일가친척들은 계롱산 일대에 살았다.

중학생시절 시제를 앞두고 아버지는 이림을 업고 걸으시며 주변 논밭을 가리켜 “니 몸과 바꿨다”고 하셨단다. 밤이면 경기를 하는 이림을 살리려 병원을 달려가야 했던 모친은 시골에서 살기보다 도립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고 항상 부친에게 강조하셨다. 부친은 넓은 땅을 소작인들에게 줬다. 이림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지주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땅을 빼앗던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해 냈다. 아마도 그 즈음 부친께서 이림의 아픈 몸을 돌보기 위해 집을 옮기면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하자 많은 전답을 처분했으리라 짐작했다.

사랑이 충만했던 학창시절
어머니께서 혼신을 다하셨으므로 선생님들도 이림을 자식처럼 생각하셨다. 예전에 뉴욕에 시장조사를 갔을때 이림은 스웨터를 사서 선생님께 드렸다. 그 분은 극장에서 이림을 무릎에 앉혀서 스크린을 잘 볼수 있도록 해 주신 선생님이셨다. 누구보다 흐뭇해 하시는 선생님은 아직도 이림을 애틋한 제자로 생각하신다.

항상 선생님을 만나 뵙고 나올 때면 몇 만원을 구겨서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선생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제자를 아직도 안쓰럽고 대견해 하시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림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여선생님께는 몇 년전 블라우스를 선물해 드렸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행복해 하셨다.

이림은 학창시절 미술수업을 좋아했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이림을 끼고 돌았다.(친구들의 표현이다) 뿐만아니라 당시 껄렁거리던(이림의 표현이다) 친구들까지도 이림에게 잘 해 줬다. 얼마전 고교동창회를 갔을때 였다. 이림이 기침을 하니 옛 친구가 차로 데려다 주면서 “이선생, 자네 같은 친구 만나려 사십년이 걸렸네”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 부인이 직접 옷을 지으러 이림스타일을 찾아왔고 이림의 옷을 입고 “행복하다”고 표현했단다.
이런 작은 기쁨이 이림의 삶에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이봉환 선생님과 재회
지난호에 이림을 큰 짐 자전거에 싣고 소풍을 가주셨던 이봉환 선생님은 나중에 충청남도 교육감이 되셨다. 이봉환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림이 고등학교 1학년때 다시 이어졌다. 누나가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어찌어찌해 사직서를 내게 됐는데 나중에 복직이 되지 않았다.

이림은 용감하게도 직접 누나의 복직을 부탁하기 위해 교육감실을 찾아갔다.
한참을 기다려 고등학생 이림은 교육감(이봉환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봉환 교육감은 이림을 알아보시고 “어떻게 왔니? 어머니께서는 안녕하시냐?”고 물어보셨다. 초등학교 6학년때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이림의 등을 쓸어 주시며 “어떻게 너를 두고 눈을 감으셨니”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이림은 “누나가 복직이 돼야 생계가 유지되는데 막막하다”며 복직을 부탁드렸지만 선생님께서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 이라며 거절하셨다. 그리고 문 밖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그리고 이림이 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셨다. 가을에 선생님을 뵙고 난 후 이듬해 2월이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접어드니 누나가 뛰어나와 대전일보에 복직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며 좋아했다.

이림은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앞에선 거절하셨지만 말없이 도와주셨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렸다. 선생님은 이림 자신보다도 자식에게 헌신하신 어머니를 생각해 도와 주셨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 덕분이다”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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