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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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배운 ‘배려’의 미학
강박감 내려놔야 창의력 생성

고객이 감각이 높고 보는 눈이 까다로울수록 ‘디자이너 이림’에게는 자극제가 됐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림은 ‘고객’이 자양분이 됐다고 강조하고 또 감사해 한다. 30~40대의 이림은 “별을 보고 출근해 별을 보고 퇴근했다”할 만큼 열심히 일했다. 이렇게 옷 만드는 일이 좋아 순수한 삶을 살다 보니 작은 집을 살 돈이 모아졌다고 했다. 매일 매일 한일은행에 착실하게 입금을 했다. 사실 “바빠서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고정고객이 많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돈을 버는 만큼 다른 곳엔 쓰지 않아도 항상 좋은 소재를 사 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재에 대한 욕심은 ‘한국 최고’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소재는 제 2의 피부입니다. 손님이 없어도 좋은 원단이 나오면 무조건 사뒀죠. 그리고 ‘좋은 옷’ 만들 생각을 하면 늘 기분이 좋았습니다”라고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노르웨이 대사와 체스를
이림에게 “훌륭한 고객이 훌륭한 디자이너를 만든다”는 사고를 확실하게 심어준 고객이 있다. 바로 노르웨이 대사이다. 당시 한국에 대사관 진출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일본에는 대사관이 있더라도 국내엔 민간 영사가 나와있을 때 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을 방문했던 노르웨이 대사가 조선 호텔 샵에서 실크 원단을 사서 이림을 찾아왔다. 대사 부인의 옷을 맞춰주러 함께 온 것이었다.

주변의 소문을 듣고 옷을 잘 짓는 이림스타일을 찾아와 옷을 맞추고 돌아갔다. 옷을 찾으러 대사가 의상실을 찾아 왔을때 문제가 발생했다. 대사부인의 사이즈보다 조금 크게 완성된 것이다. 그때가 저녁 7시 쯤 됐었단다. 이림은 당황해 하며 호텔에 돌아가 있으면 수정해 보내주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대사는 오히려 괜찮다며 여유있게 의상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체스판을 테이블에 놓더니 이림에게 게임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두시간 동안 대사와 이림은 체스를 뒀고 옷이 완성됐다. 그러자 노르웨이 대사는 수고 했다면서 팁을 놓고 돌아갔다.

이림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디자이너를 존중해주는 배려’에 깊이 감동했다. 그 뒤 이림은 의상실을 찾는 고객들에게 자신은 물론 직원들에게 깍듯하게 대해 줄 것을 당당히 요구했다. 그래야 최상의 퀄리티와 기분 좋은 옷이 탄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림은 “비싼 곳에 가면 좋은 물건이 많아요. 싼 곳에서 좋은 물건을 구입하기란 정말 어렵죠. 마찬가지로 훌륭한 품질과 디자인의 의상을 놓고 가격을 비교해선 안됩니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10만 원을 갖고도 아이디어와 독창성,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었다면 1000만 원의 가치를 주장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단 ‘품질은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전제를 붙였다. 디자이너 가치를 존중해주면 고객도 그 가치만큼의 보답을 받는다는 의미도 전제했다.

명동, 잊지못할 고객들
명동시대에는 ‘좋은 분들’ 이 많았다고 이림은 회고했다. 당시 유명했던 ‘코스모폴리탄’ 레스토랑은 상당히 값이 비싼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이 이림의 옷을 좋아했고 고객이 됐다. 가끔은 자신의 건물에 와서 의상실을 하면 좋겠다고 권유하기도 했었다. 이림은 코스모폴리탄에서 식사를 했다. 자신의 의상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고객에게 자신도 기꺼이 고객이 된 것이다.

‘코스모폴리탄’ 레스토랑에는 이북출신의 여유롭고 호탕한 단골들이 많았다. 어느 사회이든 수장이 오게 되면 그 그룹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코스모폴리탄의 고객들이 이림스타일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이렇게 묵시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던 순수의 시대였다. 옷이 귀했던 시절 여성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의상’이 전부였다. 이림스타일의 의상실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가봉을 하기 위해 세시간씩 기다려 주기도 했다. 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모양은 인상깊은 고객중 한명이었다.

항상 고뇌에 차 있었으며 독일로 유학을 떠 났다. 출국전 이림에게 와서 의상을 맞춰가져갔다. 이림은 가끔 김모양이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더욱 고뇌가 깊어져 올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훨씬 밝아져 있었다. 실제로 유럽에 가보니 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을 평범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란 결론을 얻었단다. 이림은 “디자인도 마찬가지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아닙니까?”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모감독의 부인이자 당대 유명한 모델이었던 여성도 이림의 의상실을 자주 들렀다. 항상 활기차고 겸손하며 아름다웠던 그녀와 잘 어울리게도 부군인 감독 역시 인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이림은 호평을 했다.

“유명한 분들을 보면 다들 평범하고 따뜻합니다. ‘강박감’이 있으면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예술도 의상 디자인도 모든 걸 내려놓고 원론에 충실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저는 고객들에게 배웠습니다”라고 확언했다. 이림은 “고객이 내가 가진 능력보다 훨씬 높게 생각해 주셨던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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