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 신탁식 곤산실업(주) 대표이사 - 무역은 종합예술…곤두박질 원단 경쟁력 날개가 없다
[Power Interview] ■ 신탁식 곤산실업(주) 대표이사 - 무역은 종합예술…곤두박질 원단 경쟁력 날개가 없다
  • 전상열 기자 / syjeon@ktnews.com
  • 승인 2014.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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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진행 원단 수출 2012년 1200만弗
올해 150만弗 그쳐… 2년 새 88% 급감
“숏 딜리버리 오더 진행 자체가 안된다”

바이어, 중국 원단은 글로벌 스탠다드
최신 설비 앞세워 다양한 제품 생산
품질 좋다 나쁘다 불문 중국行 러시

“국내 직물업계의 품질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기만 합니다. 섬유산업 전반에 걸쳐 일을 배우려는 신규 인력의 유입이 없는데다 기존 기술 인력의 고령화가 맞물려 나가는 것과 무관치가 않아요. 여기에 설비 낙후까지 뒤따라요. 한국 직물 수출의 큰 경쟁력이었던 숏 딜리버리 오더는 이제 국내서 진행자체가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메인 서플라이어 자격 상실이지요.”

2012년 국내서 진행한 직물 수출 규모는 1200만 달러에 달했다. 작년에 75% 감소한 300만 달러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인 150만 달러에 불과하다. 단 2년 만에 국내 진행 원단 수출은 약 88%나 줄었다. 이는 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국내서 원단 수출 진행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뜻이나 같다. 신탁식(62) 곤산실업(주) 대표이사가 말하는 한국섬유산업의 현주소다.

그는 “중국산 직물은 글로벌 스탠다드”라 말했다. 품질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바이어가 찾아온다. 원하는 직물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생산성면에서 아직은 다소 뒤지지만 설비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은 아예 경쟁 자체가 안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프린트물 생산을 예로 들었다.

“한국의 스크린 프린트 생산은 12컬러 디자인에 24인치 설비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런데 32인치 제품생산을 요구하면 컬러도수가 8컬러 디자인으로 확 줄어요. 중국은 35∼40인치 설비에 18컬러 디자인까지 생산합니다. 차별화의 요체는 다름이 아닙니다. 다양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죠.”

중국과 직물 경쟁력 열위에 대한 지적은 가격으로 이어졌다. “2∼3년 전 이었어요. 당시 한국의 프린트 강자는 대한방직 대구공장이 꼽혔습니다. 프린트 비용이 m당 3달러였는데 중국은 절반에 불과한 1달러50센트였어요. 낙후된 설비에 가격은 되레 비싸니 바이어가 한국에 오더를 줄 수 있겠습니까?”

곤산실업의 올해 매출은 300억 원에 이른다. 이중 섬유류 비중은 260억 원, 약 87%에 육박한다. 그렇지만 섬유부문 매출 대부분은 중국 소싱을 통해 이뤄진다. 국내 생산을 통한 섬유류 수출은 고작 150만 달러에 불과하다. 2년 만에 약 88%가 줄었다. 경악, 그 자체였다. 그도 이런 사태로 비약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외형 확장을 겨냥했던 신 대표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창업 이후 비즈니스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서 연 200억 원 매출만 지켜나가자 생각했습니다. 외형확장보다 탄탄하고 실속있는 경영을 최선으로 여겼죠. 그런데 3년 전 우연찮게 신한은행 주최 한 포럼에 참석하면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포럼 참석자 중 비슷한 무렵 창업한 한 봉제회사 경영자가 3000억 원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육성시켰다는 말이 자극제가 됐어요. 비록 국내 경제규모가 커졌던 배경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인위적으로 외형을 줄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데 생각이 닿은 것이죠.”

마음을 고쳐먹자마자 연 매출이 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2012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연 2000만 달러 매출에서는 한 눈에 모든 문제가 파악됐는데 3000만 달러를 넘어서니 이게 아니었다. 2013년 들어서자마자 매출이 27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외형확장의 열쇠는 섬유수출에 달렸는데 되레 국내서 오더진행에 급제동이 걸렸다. 2013년 국내 진행 수출규모가 300만 달러로 급락한 것은 이의 방증이었다. 더 이상 국내서 원단수출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본격적으로 중국 소싱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올해부터 중국 사무소 조직 확대에 들어갔어요. 현재 협력업체만 70여 곳에 달합니다. 그런데 100원 짜리 제품을 500원이라고 말하는 게 중국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가지 개념이 아니에요. 그들만의 상술인데 나무랄 일 또한 아니라는 겁니다. 문화가 서로 다르다보니 같은 사안이지만 보는 시각은 큰 차이가 납니다. 이 갭을 줄여나가야 비즈니스가 원활해지고 마진을 확보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는 섬유류 중국 소싱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라 말했다. 그렇지만 소싱에 앞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당부를 빠트리지 않았다. 가격을 제대로 내는 경우가 거의 드물고 납기에 대한 관념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최소한 3곳 이상 업체와 비교한 뒤 네고를 생활화하라 말했다.

힘들더라도 가격에서만큼은 선을 분명히 긋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라했다. 또 원래 날짜보다 최소한 3∼4일 앞당겨 납기날짜를 주라는 당부도 뒤따랐다. 제대로 물건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없다는 뜻이다. 곧이곧대로 했다간 당연히 해야 할 검품을 못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발주자가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늘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신탁식 대표이사는 종합상사 효성물산에서 20년간 무역 비즈니스에 앞장서 온 정통 상사맨으로 명성을 떨쳤다. 79년 입사와 함께 약 10년간 섬유가 아닌 국내 일반상품 수출을 이끌었다. 그가 섬유와 연을 맺은 것은 1988년 해외지사 개설업무를 맡아 주재원 생활에 나서면서다. 첫 업무가 중동 두바이에 지사 개설이었다. 효성물산이 전인미답의 중동에 원단 수출의 강자로 등극하는 기반을 놓았다. 그리고 1993년 브라질 상파울로에 지사개설 업무가 떨어졌다. 93년 당시 효성물산 대브라질 수출규모는 연 5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5년 만에 10배가 늘어난 5000만 달러 시장으로 키워냈다.

“솔직히 이 당시만 하더라도 섬유류는 감성에 치우치는 부분이 많아 매력적인 업무라 생각을 않았어요. 주재원 시절 섬유류 수출이 왕성했지만 직접 핸들링하기보다 직원들에 힘을 실어주는 관리에 주력했습니다. 제품이 도착하면 출하에 앞서 검품만큼은 무조건 철칙으로 삼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섬유류 수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비즈니스 강점은 철저한 포토폴리오를 바탕으로 우수한 스탠다드 제품수출이었다. 효성스즈끼 오토바이 브라질 수출은 큰 사례로 꼽힌다. 당시 브라질 오토바이 시장은 일제 혼다가 석권하고 있었다. 시장조사를 끝낸 뒤 브라질 오토바이 국산화율 제고에 맞춰 조립공장 건설 제안을 담아 대리점 물색에 나섰다. 그리고 연 700만 달러 수출을 이끌어냈다.

10년 간 해외주재원 생활은 목표달성이라는 큰 성과를 안겨줬지만 관운은 그를 비켜나갔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러니컬하기만 했다. 1997년 본사로 발령받아 귀국했지만 IMF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효성그룹도 예외가 아니었다. 효성물산을 비롯 그룹 전체가 구조조정 홍역에 몸살을 앓았다.

1998년은 퇴직과 독립이 교차하는 운명의 해이기도 하다. 많은 후배들이 명예퇴직 이름아래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고참이 나가줘야 후배가 사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사표를 던지면서 퇴직 이후의 대책은 세우지도 않았다. 주위에서는 무모하다 했고 회사에서는 왜 나가느냐며 만류했다. 그렇지만 결심은 꺾이지가 않았다. 1988년 6월1일, 그와 여직원 딱 두 명의 곤산실업은 닻을 올렸다.

현재 곤산실업의 주력 시장은 브라질이고 주력 제품은 여성용 원단이다. 14년 전 2000년 중국 소싱은 20% 수준이었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90%가 넘는다. 중국 사무소 조직을 10명으로 확대하고 본사 파견 인력도 1명에서 2명으로 늘린다. 원활한 중국 소싱 확대는 그가 지향하는 외형확장과 맞물려 나간다.

“상사맨 20년과 독립해 16년, 36년을 오로지 ‘무역의 길’만 달려왔어요. 무역은 종합예술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죠. 금융과 물류가 조화를 이루고, 이질적인 사람과의 융합이 빚어내는 산물입니다. 신뢰는 촉매라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살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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