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ierview] 윤혜경 ‘윤스 퀼트’ 대표 - 일본에 뒤진 ‘퀼트’ 문화…저변 확대 노력
[Power Inierview] 윤혜경 ‘윤스 퀼트’ 대표 - 일본에 뒤진 ‘퀼트’ 문화…저변 확대 노력
  • 한국섬유신문 / 정기창 기자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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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10년 걸릴걸 1년만에 배우는데 2년만에 포기' 인내와 노력 필요한 일

한국봉제기계공업협회 장규용 부회장은 이 사람을 두고 “우리나라에 처음 퀼트를 도입한 주인공이며 국내에서 퀼터로 활동하는 사람들 70% 이상을 제자로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럽에서 출발해 미국에서 꽃을 피웠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퀼트 문화를 받아들였고 여기에는 전적으로 1980년대 재경원 공무원이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던 바로 이사람, 윤혜경 윤스 퀼트(Yun’s Quilt) 대표에게 신세진 바 크다.

퀼트는 예전 어릴적 우리 어머니들이 조각보를 기워 이불을 만드는 누빔과 동의어다. 그러나 단순 기능에 지나지 않던 바느질이 연속성을 가진 패턴 문양으로 이어져 예술 차원으로 승화되고 이게 곧 문화가 됐다.

평면적이던 패턴은 인형이나 바구니 같은 입체 형상을 가진 분야로까지 확대돼 지금은 고급 사교 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는 ‘윤스 퀼트 페스티벌’이 20주년을 맞는 해다. 윤대표와 퀼트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조각보와 누빔 합쳐진 게 퀼트’
“퀼트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당초 유럽에서 시작됐으나 17세기 면화 재배가 많은 미국 남부로 들어가며 꽃을 피웠다. 헤진곳을 기워 쓰는게 퀼트의 기원이었지만 지금은 패턴화하면서 문화로 발전했다. 예전 미국 서부시대에는 마음에 안드는 부인은 퀼트 모임에 껴주지 않는 ‘왕따’ 문화도 있었다. (웃음)”

남편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다
“1984년 당시 재경원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간 일본에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게 퀼트 모임이었다. 사상과 관련된 일이었으면 알력이 있었을텐데 고급 사교 문화라는 인식들이 있었고 여성들에게 친숙한 바느질 같은 취미였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 동화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그런데 그 부인들이 그러더라. “한국인은 10년 걸릴걸 1년만에 배우는데 2년만에 포기하더라”고.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86년 귀국하고 나서는 88년까지 2년간 와시자와 레이꼬 선생님으로부터 도제식으로 배웠다. 일본 NHK에서 1년에 한번 도쿄돔에서 퀼트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이 행사를 리드하는 일본 퀼트 선구자 5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대가다.

교육이 끝나고 강사증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만든 모든 프린트나 아이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쯤으로 보면 된다. 선생님이 만든 교재도 번역해 국내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자주 일본으로 건너가 작품전에도 참여했고 제작에 필요한 원단제품들도 선생님에게 직접 사서 쓴다.”

MBC ‘차인태의 아침살롱’과 인연
“88년 MBC ‘차인태의 아침살롱’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여기에 8분간 소개되면서 큰 반향이 일었다. 당시 따로 사무실을 내지 않고 작품활동하던 우리집에 이틀간 160명이나 몰려왔으니까. 이중 85명이 정식으로 배우겠다고 해 학원을 설립하게 됐다.

당시 10명 이상만 모이면 지방출장도 자주갔다. 공무원 월급이 많은가. 돈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생활도 윤택해지고…무엇보다 재미있게 일했다.”

일본에 한참 뒤지는 퀼트 저변
“미국 퀼트는 문화로 발전했고 일본은 문화를 포장한 상업성으로 커졌으며 대만은 완전한 상업성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은 또 다르게 교육을 통해 퀼트 문화가 성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 이중 한국 시장이 가장 작다. 일본은 퀼트 원단이나 바늘을 만드는 수십억엔 짜리 관련 회사들도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천(원단)이 가장 기본 재료인데 퀼트에 맞는 천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이 없다. 퀼트는 면 40수 평직 원단이 가장 적합한데 국산은 조직 밀도가 높아 바늘이 안들어간다. 또 염색 견뢰도가 낮아 나중에 색깔이 바래거나 없어진다. 염색 전에 면을 숙성시켜야 되는데 일본 기업이 이 작업을 3~4일 한다면 우리 기업은 하룻만에 끝낸다.

우리와 18년간 독점 계약으로 천을 공급하는 유와 쇼텐(Yuwa Shoten)이라는 회사가 있다. 연 매출이 60억 엔정도 되는데 유럽풍 원단으로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작지만 강한 회사다. 이런 회사가 왜 없나. 한국 퀼트 시장 저변이 넓지 않아 바잉 파워가 없다보니 일본 기업들은 재료를 비싼값에 판다. 속상한게 많다. 우리 기업들이 퀼트 시장을 주목하고 관련 제품을 개발해 내놨으면 좋겠다.

겉천은 프린트 기술상 어렵다고 하더라도 안쪽에 쓰는 천은 국산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 수입 물량이 1/3은 줄어들거다.”

20주년 맞는 ‘윤스 퀼트 페스티벌’
“일본 최대 규모인 ‘도쿄 국제 퀼트 페스티벌’보다 8년을 앞서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레이꼬 선생님은 올 1월 열린 도쿄 페스티벌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작품을 출품했는데 우리는 올해 20주년을 맞아 선생님 허락하에 이 작품을 한국서 재현하기로 했다. 똑같이 하는게 아니다. 작품들을 재해석해서 다르게 만들고 있다. (올해 윤스 퀼트 피스티벌은 8월22~27일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 올해는 82명이 작품을 전시한다.

상업성으로 변질되는 문화 개탄
“퀼트를 배우면 정신적으로 윤택해지고 금전적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소득층이지만 교육을 받다보면 이런 차이는 없어지고 모두 동등해진다. 바느질에 걸리적거리니까 비싸고 화려한 반지도 빼고, 높낮이가 균일화된다.

또 퀼트는 1:1 문화라서 배우는 과정 중 천이나 색깔 같은 것들을 상담하며 많은 수다를 떨게 되므로 서로간 동질성을 갖게 된다. 연속적 무늬가 주는 안정감으로 인해 전문직 여성들이나 주부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퀼트가 비싼 취미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못 배운거다. 작품을 만들 때 미리 모눈종이에 그려서 필요한 만큼만 준비하면 되는데…일부 돈벌이에 치중하는 데는 물건을 팔기 위해 기본 천을 모두 사도록 하는 곳도 있더라. 1년에 작품 한 개 안내놓으면서 강사가 되길 원하고…실력없이 딴짓하면 안된다. 리더가 룰을 지키지 않으면 자멸하게 돼 있는 법 아닌가.
정기창 기자 kcjung100@ktnews.com
사진=장유미 기자 yumi@k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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