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섬유패션 CEO, 잔소리 들을 준비 돼 있는가
[한섬칼럼] 섬유패션 CEO, 잔소리 들을 준비 돼 있는가
  • 정기창 기자 /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5.11.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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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무역은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대비 25.2% 증가한 7020억원(이하 연결재무재표 기준)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22.1%, 24.4%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률 15%, 순이익률 11%라는 수치는 국내 섬유패션업계 통틀어 단연 1위다.

부가가치 높은 IT기업에 버금가는 실적을 올리는 영원무역 성공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한달전인 10월15일, 동대문 JW매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봉제산업 인력포럼’에서 이런 궁금증이 다소나마 풀렸다. 이날 성기학 회장은 강연자로 나와 영원무역의 혁신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통해 국내 봉제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던졌다.

성 회장은 ‘대외비(對外秘)’라며 본인이 직접 발표자료를 들고 나왔다. 이날 내용만 놓고 보면 성 회장이 밝힌 영원무역 혁신의 실체는 원가 절감을 위한 자동화와 커스터마이징, 철저한 직원관리 3가지로 요약된다.

영원무역의 원가 절감은 봉제 전단계인 재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높은 생산성으로 유명한 영원무역 베트남 공장은 2야드 원단을 받으면 컴퓨터 설계를 통해 1.9야드를 마킹하고 다시 자동화된 캠커팅기를 활용해 정교하게 재단한다. 성 회장은 “자동화하고 컴퓨터화하면 재단만 잘해도 생산원가가 12% 줄어든다”며 “대부분 자동화 설비는 생산 현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개조)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재단이 끝난 원단은 일반 봉제라인이 아닌 8명이 1조가 돼 움직이는 모듈러 라인으로 넘어온다. 해외 봉제 공장은 보통 수십대의 재봉기가 늘어선 가운데 자기 공정이 끝나면 뒷자리 다음 단계로 넘기는 라인방식이 일반화 돼 있다. 그러나 영원무역은 8인이 한 개의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각 생산 단위를 모듈화 한 것이다. 가운데 통로가 뚫린 사방형 작업대 바깥쪽에 7명이 붙어 봉제에서 최종 단계인 패킹(포장)까지 완성하고 1명은 가운데서 보조를 맡는 형식이다. 이렇게 하면 보조인력이 현저하게 줄어 인건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

한꺼풀 베일 벗은 영원무역 혁신 비결
성기학 회장 ‘봉제산업 포럼’서 밝혀
‘자동화·커스터마이징·직원관리’가 핵심
가장 중요한 화두는 끊임없는 자기 개발
공장 정리 같은 기본부터 확실히 지켜라

디테일에 강한 성 회장 스타일은 근로자들이 앉아서 일하는 봉제의자에서도 발견된다. 이 봉제의자는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는 근로자들 편의를 위해 에어쿠션을 달았고 작업자에 맞게 높낮이와 간격 조절도 할 수 있다. 성 회장은 “수 차례 실패를 거듭하다 이탈리아 기술자를 만나 공동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영원무역의 뛰어난 영업실적과 매출 같은 외형에 주목한다. 그러나 성 회장은 오히려 “영원무역은 외형보다 오퍼레이팅(operating, 운영)이 강한 회사”라고 단언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옷을 만들면서 많은 이익을 내는 비결은 바로 운영 노하우에 있다는 뜻이다.

영원무역에서 생산하는 모든 의류는 제품생산 프로그램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된다. GSD프로그램을 활용해 공정을 초단위로 나눠 계측하고 놀고 있는 라인이 생기면 바로바로 물량을 투입해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하루에 1500~2000개 오더가 한꺼번에 들고난다. 프로덕션 플래닝 프로그램(GSD)에서 빈 공기가 나오면 그 공간을 어떻게든 메꾼다”는 것이다. 세아상역의 인도네시아 공장도 같은 시스템을 쓰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성기학 회장은 직원 면접시 “영어 잘할 것, 담배 안필 것, 거짓말 하지 않을 것, 3가지를 본다”고 했다. 영원무역이 정기적으로 여는 글로벌 보드 미팅(Global Board Meeting)은 세계 각지에서 60~80명이 한자리에 모여 5일간 회의를 하는데 이때 만국 공통어인 영어를 쓴다. 영어를 못하면 해외 비즈니스를 하지 못할뿐더러 위로 올라갈 기회 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성 회장은 거짓말을 생산성의 문제로 본다. “로마가 왜 멸망했나. 노예보다 감시자가 많았다. 북한도 그런 체제다. 감시가 많아지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거짓말은 용서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영원무역의 혁신이 국내 생산 환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성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영원무역의 혁신은 끊임없는 자기 개발이라는 점에서 배울점이 많다. 이날 성 회장은 영원무역의 혁신 비결을 국내 공장에 전수해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잔소리 들어줄 의향 있으면 여러분 공장에 직접 가 보겠다. 그러나 잔소리 들을 각오는 해야 한다. 치우고 정리하란 소리 많이 할텐데 들어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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