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대한민국 역사상 첫 패션쇼가 열린지 60년 패션인생 70주년, 아흔의 현역 ‘노라노’
[Power Interview] 대한민국 역사상 첫 패션쇼가 열린지 60년 패션인생 70주년, 아흔의 현역 ‘노라노’
  • 이영희 기자 / yhlee@ktnews.com
  • 승인 2016.02.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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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내면성찰로 패션계 귀감
세계 13개국에 고급의상 수출 박차…“불가능은 없어”
“죽기직전까지 패턴뜨고 디자인할 것” 후배들에게 이정표
고객들에게 아름다움과 편안함 선사하는 의상 추구

1956년 서울의 반도호텔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첫 패션쇼가 열렸다. “쇼라고 하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1호 디자이너로 각인된 노라노가 경이롭기까지한 진풍경을 펼쳐 놓았다. 패션계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아흔을 바라보는 현역인 노라노가 첫 패션쇼를 연지 60년, 또한 개인적으로 패션인생 70년을 맞았다. 현재 노라노는 전세계 13개국을 향해 의상을 수출하고 있다. 설명절 연휴, 다른곳과는 달리 글로벌 시계에 맞춰 분주한 청담동 노라노 스튜디오를 찾았다.

한국나이로 89세인 노라노는 아직도 오랜시간 작업대에 서서 직접 패턴을 제작한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우아하고 여성스런 외모와 달리 손은 험하고 손가락은 휘었다. 마치 발레리나의 발처럼,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자긍심과 오랜세월의 수고로움을 입증해 준다.

“난 아홉수가 인생의 격변기였고 또한 행운을 가져다 줬지” 라며 속인들이 꺼려하는 아홉수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19세에 이혼을 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됐고...(중략) 49세엔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수출을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에 미국 유명백화점의 쇼윈도 전면을 도배를 하다시피한 ‘노라노’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명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맹위를 떨쳤고 항상 당당한 동양여성은 서양인이 입어 편안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제 값 받는 의상을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다.

1967년 노라노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와 세간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윤복희는 설연휴 모방송사의 특집방송에 출연해 당시를 생생히 증언했다. “노라노 디자이너를 알기전, 미국에 공연하러 갔을 때 유명백화점에서 노라노 브랜드를 만났고 태극기가 붙여져 있어 자부심에 가슴이 뭉클했다”라고 당시를 떠 올렸다. 윤복희를 비롯해 최은희, 문희, 엄앵란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의상을 담당했던 노라노는 한국여성으로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 처음 유학을 떠났으며, 프랑스 파리로 떠나 럭셔리한 글로벌시장의 소비취향을 직접 간파하기도 했다.

미국유명백화점에 최초로 진출한 동양여성이자 한국디자이너였으며 홍콩 등 아시아시장에서 가장 카피가 성행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처럼 최초라는 수식어는 노라노에게 끊임없이 따라 붙었다. 미국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일본에 진출하는 등 숨가쁜 젊은 나날들을 보냈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노년’이 아니라 아직도 현역으로 열정적인 삶을 사는 노라노는 이 시대의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엄청난 귀감이 되고 있다.

“100세 시대에 나는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할 것”이라는 노라노는 그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와 내면성찰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기위한 건강한 삶을 실현하고 있다. 평생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 온 노라노는 “50세는 즐거웠고 60세는 피나는 노력으로, 70대는 죽기살기로, 80대는 살기위해서...”라고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도 아침이면 비가오나 눈이 오나 도산공원을 산책하고 채소와 곡물, 견과류위주의 아침식사를 한다. 한시간씩의 스트레칭과 신문보기, 아침뉴스를 통해 세상의 트렌드를 속속 받아들인다.

오전과 낮시간은 업무에 전념하고 저녁은 소식과 일찍 잠자리에 들기, 충분한 수면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과의 평생 싸움은 이처럼 대한민국 선배디자이너로서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오늘날의 노라노를 바라볼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디자이너는 보이는 것은 화려하지만 사람들이 입어서 편안하고 매력적인 옷을 짓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고달프지만 매력적인 직업임을 각인시킨다.

요즘 노라노의 드레스는 유럽과 미국, 아랍권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의 부유층 유대인여성, 아랍권의 여성들이 즐겨찾는다. 그녀들의 체형과 문화, 사회환경 등을 고려하고 마인드를 충족시키는 노라노의 디자인에 대한 호응도는 오랫동안 사그러지지않을 전망이다. “우리옷은 너무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디테일이 섹시하고 여성적이며 편안하다”고 명쾌하게 장점을 설명했다.

내년이면 아흔을 바라보는 노라노 선생. 진정한 패션디자이너의 길에 대한 좌표이자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고 생산적인 삶에 만족한다는 노라노가 현존하는 최고의 디자이너이자 패션계 스승으로 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대한민국 패션피플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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