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일광(一光)’ 바이러스, 훌륭한 DNA는 부모님의 선물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일광(一光)’ 바이러스, 훌륭한 DNA는 부모님의 선물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2.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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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광의 바이러스는 막강하다. 예방약도 없고 처방전도 있을 수 없다. 상상의 세계 역시 무궁무진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처음에는 “말도 안 돼”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그럴 듯 해 보이고 마침내는 “실현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대화에서 점점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빨려들어 가서 이해가 되기 시작할 때 즈음이면 어느덧 그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자는 손 선생이 만약 종교를 만들었다면 많은 이들이 신봉하는 ‘교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제 4집단’의 핵심 멤버였던 디자이너 손일광을 생각하면 주변의 지인들이 ‘4차원’의 범주에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문화에 대해 토론하고 호기심과 상상을 더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 온 ‘제 4 집단’은 한국 설치 미술을 이끌어온 원류이면서 행위예술, 전위예술의 장르를 만든 선구자로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장르를 없애기 위해 시작한 해프닝과 퍼포먼스가 사실은 또 다른 새 장르를 만든 것이다.

언제나 꿈꾸는 해프닝
기자와 인터뷰 중에 손일광 선생은 꼭 해 보고 싶은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실현하지 못했다고 자주 거론하곤 했다. “예전에 신세계 백화점앞 분수를 보면서 생각했었는데 아침 출근시간에 거품세제를 풀어 놓는 겁니다.

출근시간에 맞춰 분수가 올라가면 거리는 점점 비누거품으로 뒤덮여요. 거품안으로 사람들과 차들이 드나들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거품을 작품화하는 해프닝이 성사되면 세계 토픽에 나갈거예요. 이것도 하나의 전위예술 장르가 될 겁니다.” 얘기하는 내내 눈에서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이루지 못한 꿈 중에 또 다른 하나, 바로 한강을 하얀 천으로 덮는 것이라고 한다. 88올림픽처럼 한국에 대형 행사가 있을 때 서울을 휘감아 도는 한강에 메시지를 담은 섬유를 뒤덮는 것인데 이때 소재를 제공한 업체의 홍보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나 국민들에게 상공에서, 혹은 드라이브 중에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라고 진지한 설명을 하기도 했다.

해운대 모래를 퍼와 접착한 후 드레스를 만드는가 하면 짚이나 장어 가죽을 이어 비옷이나 수영복을 만드는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패션예술의 소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손일광 선생은 주최측으로부터 로봇의상 디자인<사진>을 의뢰받았다.

1988년 8월25일자 중앙일보 15면에는 ‘88로보트’라는 제목으로 디자이너 손일광의 로봇의상이 소개됐다. <옷차림도 ‘첨단’>“ 올림픽 개막식 로봇 춤 ‘혼돈’ 프로그램에 쓰일 옷 3종류 45벌이 23일 처음 공개됐다. 선아트디자인 손일광씨의 작품”으로 게재됐다.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깡통 로봇의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관절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살린 활동성과 소재 차별화를 통해 ‘패셔너블한 첨단의 로봇’을 표현했음을 기록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로봇형태의 진보적 전위의상>이라고 당시에 언론사들은 표현하고 있다.

따뜻한 유년의 기억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손일광의 끊임없는 상상력과 발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이를 불문하고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궁금했다. 손일광 선생은 “부모님께서 주신 유전인자가 좋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손일광의 여성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것이지만 남자에 비해 여성의 뇌기능이 좋은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손일광은 조용한 시골에서 자랐지만 유일하게 “풍금이 있는 집 아들”이었다.

풍금은 잘 생기고 체격이 좋은 부친이 연주하곤 하셨는데 대범하고 자상하며 신뢰를 받는 분이셨다고 기억한다. 어머니는 ‘외유내강’ 한 분이셨는데 당시 혼자 공부해 한글을 익혔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조용한 성품을 가지셨다고 했다. 바느질과 음식솜씨가 좋았으며 형과 누이 둘, 막내인 손일광을 자애롭게 키우셨다고.

불행한 우리 민족의 역사속에서 이념을 달리 해 일찍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부친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많은 대중앞에서 한치의 흔들림없이 연설하던 모습이었다.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면 철로의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손일광 선생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비문에 이렇게 썼다. “어릴적 철로에 귀를 기울이듯 저희 4남매는 어머님 무덤에 귀를 대고 있습니다”라고. 어머니가 그리운 막내 손일광은 유년의 따스함과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훌륭한 DNA, 즉 손일광 바이러스는 제 4집단에 이어 남성디자이너들을 감염시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함으로써 패션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 ‘이목회’라는 이름으로 20여 명이 매월 둘째 목요일에 만남을 갖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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