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순옥 이상봉 대담 - 디자인·패턴·봉제 ‘3위일체’ 돼야 섬유패션 강국 도약
■ 전순옥 이상봉 대담 - 디자인·패턴·봉제 ‘3위일체’ 돼야 섬유패션 강국 도약
  • 정기창 기자 / kcjung100@ktnews.com
  • 승인 2017.07.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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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패션 백년대계…“봉제산업 육성에서 시작”

이상봉 디자이너는 최근 들어 종종 봉제인력 육성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노쇠화된 인력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취지다.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장 역시 봉제인을 포함한 소공인 사회적 지위향상과 권익발전에 노력하며 19대 국회에서 다수의 관련 정책을 입안했다. 이들은 한국 섬유패션산업 발전에 봉제산업 육성은 필수라는데 의견을 일치하고 젊은 인력 양성과 관련 산업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본지 창간 36주년을 앞두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상봉 디자이너는 봉제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이상봉 디자이너 : 지금부터 봉제 인력 육성 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 봉제가 무너지면 서울패션위크 같은 행사들도 절름발이가 된다. 봉제는 3D 업종으로 알려져 젊은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한다. 우리 회사는 40대 미싱사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50대가 넘었고 60대까지 있다.

디자인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항상 3위 일체를 얘기한다. 디자인·패턴·봉제가 있을 때 가장 완벽한 옷이 된다고. 새로운 재봉기법을 시도해 10개 중 9개는 실패하고 1개만 성공해도 그게 발전인데….이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예전과 많이 다르다. 봉제스텝들이 어려운 작업은 다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스트리트 패션에는 강한 반면 드레스나 수트 같은 정통복에는 취약하다.

이제는 샘플도 중국에서 해오는 실정이다. 오늘(대담 당일)도 중국에서 니트 샘플 10개가 들어왔다. 샘플 생산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다. 외국 옷 보고 흉내만 내다보면 경쟁할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된다. 봉제도 얼마 안 남았다. 우리와 협력하는 외부 공장을 보니 해외에서 아예 봉제팀을 꾸려 데려오는 곳도 있더라. 샘플이든 봉제든 앞으로 5년 안에 인력 육성하지 못하면 우리 산업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될 것이다.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장 :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모두 입을 닫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나 한국패션협회 등 유관 단체들이 이 문제를 말하는 곳이 없다. (19대) 국회의원 당시 처음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정부와 지자체, 유관 기관들이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울시 중구에는 봉제공장이 3000여 곳 있다. 이 중 샘플실이 9.2%로 조사됐다. 그래서 서울시에 중구를 국내 의류 샘플 기지로 만들자는 안을 냈다. 1차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샘플 공장을 육성토록 하는 내용이다. 2차로 이들 집적 지역을 세계적인 샘플기지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샘플을 만들러 올 수 있게 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5월에는 중랑, 종로, 중구, 성북구 등 7개 구청장이 모인 가운데 ‘동북권 자치구 패션봉제산업 발전협의회’를 열었다. 서울시 2만5000여개 봉제업체와 12만2000명에 이르는 종사자들의 일자리 창출, 일감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6월에는 서울시와 협약도 맺었다.

이상봉 : 적어도 봉제에 관한 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모두 중국인 일색이다. 한국은 그래도 아직 봉제수출이 계속되는 나라다. 디자인의 경우는 해외서 공부한 유학생들이 1/10 정도 된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봉제를 하는데 이게 안 된다면 어떻게 하나. 당장 5년 안에 우리도 중국 인력을 써야 할지 모른다.

■ 봉제인력 노쇠화가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방법론이 필요하다.

전순옥 : 2013년 봉제공장들이 많은 이탈리아 피렌체 남쪽 지역을 간 적이 있다. 이곳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약 15~17년 전부터 중국 사람들이 봉제공장을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중국에서 근로자의 30%만 들여 오겠다고 했는데 5년이 지나니까 100% 중국 근로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세계적 브랜드 기업들이 위기를 느꼈다. 프라다, 베르사체 등 명품 브랜드들은 자기네 제품이 모두 중국공장서 생산된다는 소문이 날까 두려워 했다. 수백 년간 키운 브랜드가 하루 아침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산한 공장에는 공임을 15~20% 더 주더라도 자국민을 채용한 공장에서 옷을 생산하기로 했다. 대신 판매 가격도 높였다.

당시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 길이 이탈리아가 앞으로 살아남을 길이라고 답하더라. 더 많은 공임을 지불하더라도 이탈리아 근로자들을 육성하고 이들이 생산해야 전체 산업이 살아 남는다고. 근로 조건도 개선해 주 5일 근무하고 정규 근로 시간을 지킨다고 하더라.

피렌체 도매 시장을 가보니 점포가 1만개나 됐다. 택(tag)을 보니 같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붙어 있어도 중국계에서 생산한 옷은 값이 훨씬 싸다. 전략이 확 바뀐 것이다. 최근 세계 트렌드가 그렇지 않나. 미국은 ‘메이드 인 USA’ 일본은 ‘메이드 인 JAPAN’으로 자국 산업 육성으로 기조가 바뀌고 있다.

이상봉 : 디자이너가 선진국과 대등하게 싸우려면 봉제산업이 기반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인까지 중국의 보조역할에 그치게 된다. 이미 우리는 중국의 영향권내 들어가 있다. 앞으로 5년이 중요한 이유다. 국가적 차원에서 20명, 30명씩 인력 양성을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물꼬를 터 줬으면 좋겠다. 기업도 디자이너도 모두 환영할만한 일이다.

일본은 봉제와 패턴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다. 유학하고 현지 취업이 제일 잘되는 편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가보면 일본 젊은 친구들이 많다.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술 습득은 빠르지만 기본기는 약하다. 기술만 빨리 배우면 됐지 왜 기본부터 하냐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쉬운 것부터 조금씩 배워 나가야 한다. 최고 실력을 키우려면 아무리 빨라도 5~10년은 걸린다.

전순옥 : 작년 3월 도쿄 인근 공장을 가 봤다. 20대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 대부분 복장학원에서 기본교육을 배우고 취업전선에 나왔다. 이들은 팀을 짜서 일하는데 목표량과 생산량이 쭉쭉 올라가더라.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전문가 자격시험인 SMQT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1급 통과를 못한다. 기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7명 중에 2명 정도만 통과한다. 이중 2급 시험 합격자도 3명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사례 주목하자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자국생산을
기치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샘플까지 중국에서 해오는 상황…
생산기반 붕괴 신호
인력 육성 못하면 5년내 산업쇠락길 접어들어



■ 업계 대표성을 가진 곳들이 분발해서 더 나은 시스템을 시도해야 한다.

이상봉 : 여러 곳에서 이상봉이 육성시스템을 만들라는 주문을 듣는다. 그걸 하자는 거다. 기업도 나서 디자이너 키우고 봉제인력 양성하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아직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에 의하면 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아직까지 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시작하면 우위에 설 수 있다.

봉제산업을 육성하지 않고는 패션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 적어도 샘플 제작 인력이라도 키우지 않으면 이제 모든 것을 중국에서 수입해야만 한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샘플팀이 50~60대가 대부분인데 이들도 앞으로 사라져갈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제자 한 명, 학생 한 명이라도 제대로 가르치자는 말들이 나온다.

작년에 특성화고 학교측과 선생님들과 대화해 보니 봉제 교육에 상당히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들을 미리 뽑아 교육기관과 연계해 취직까지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고등학교 2~3학년부터 방학마다 1~2개월씩 교육하고 실습하면 취업이 충분히 가능하다. 단, 취업 전까지 정부에서 임금절반을 지원해 준다면 좋겠다.

기업도 나머지를 부담하면 고급 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다. 취업 후에도 마찬가지 지원이 필요하다. 봉제공장이 급여를 전부 감당하기 힘드니 정부에서 절반 정도는 부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2년제 대학만 나와도 봉제를 안 하려 하는데 적은 숫자라도 고등학생을 발굴해 시작을 해 보자.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상봉 디자이는 2012년부터 ‘고교패션컬렉션 with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을 개최해 오고 있다. 그는 이 대회를 통해 봉제산업 젊은 인력 육성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아울러 작년에는 ‘고교패션컨테스트 with 이상봉’을 함께 개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을 발굴하고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전순옥 : 굉장히 필요한 일이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샘플생산 기능만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겠나. (임금 보전 문제는) 제도를 손보면 정부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지금도 청년 일자리 창출 기업에 지원해 주는 자금이 여럿 있다. 주얼리 업종의 경우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면 2명 고용할 경우 1명은 정부에서 임금을 지원한다.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업연구원, 소상공인정책연구소, 한국의류산업협회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류를 어떻게 제조업, 봉제산업에 접목할 것인가 논의하는 기회가 있었다. 최고 기술자들을 끊임 없이 배출하고 단순 작업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접목 시키자고 제안했다. 과거에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었지만 이제는 다품종 중량 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이상봉 : 필요한 일이다. 봉제는 자동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인력을 줄일 수 있는 반면, 디자인이나 패턴은 4차 산업혁명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젊은 인력을 양성해 고숙련 기술자를 배출하자는 것이다. 5~10년 뒤 기술 발전으로 대량 생산은 기계가 대신할지 모른다. 그러나 샘플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다.

■ 정부 지원도 좋다. 먼저 업계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전순옥 : 선진국은 이미 30년 전부터 ‘클린 클로즈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운동을 해 오고 있다. 우린 아직까지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없는 게 아쉽다. 요즘 봉제공장 사장님들한테 ‘공장 정리정돈은 잘 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15년 넘게 공장 사장님들은 ‘일감 없다, 사람 부족하다’며 같은 답을 한다.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분들에게 내일을 생각해서 오늘 공장을 정리하고 깨끗이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면 2가지가 해결된다. 첫째 오더가 많아진다. 물건 하러 와서 정리정돈 잘 돼 있으면 이 공장은 뭔가 해내겠구나 하고 신뢰하게 된다. 지저분해서 어디에 물건 하나 두기 어렵고, 재단판도 엉망진창이면 내 원단 망칠까 봐 안 넣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인력 조달이 용이하다. 공장 보고 일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야 좋은 사람이 들어오지 않겠나.

그래서 공장 정리정돈 프로젝트를 한 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청소를 전문으로 해주는 곳과 연결해 깨끗한 공장을 만드는 일이다. 정리정돈하는 법을 알려 주자는 것이다. 몸에 배지 않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업체를 통해 깨끗한 공장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습관으로 굳어질 것이다. (봉제공장 사장들이)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다. 청소할 때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상봉 : 맞는 말이다. 우리 디자이너에게 샘플 만들면 항상 보관하라고 지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전순옥 : 예전에 미국의 모 브랜드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회사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생산된 모든 디자인을 보관하고 있다. 연필 스케치부터 하다못해 실패한 디자인 샘플까지 아카이브(archive)에 보관하고 있더라. 놀라왔다.

일본 공장도 다르지 않다. 도쿄에 약 67개 봉제공장이 있다고 한다. 정리정돈이 기막히게 잘 돼 있다. 실과 원단, 패턴은 물론 바늘침까지 게이지 별로 수량을 맞춰 정리하고 컴퓨터에 내용을 기록한다. 수십가지 소모품을 정리하고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두드리면 최종 1개 남은 품목까지 상세히 분류해 보여준다. 그러니 20대 젊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이상봉 : 기왕 봉제산업에서 쓰는 말도 바꿨으면 좋겠다. 전문 기술을 가진 인력 양성하려면 이들이 언어에서도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데 지금 쓰는 말은 낙후된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한번 고려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리=정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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