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대기자의 화판(化板)-30] 한번 믿었으면, 전부를 걸고 맡겨라
[김종석 대기자의 화판(化板)-30] 한번 믿었으면, 전부를 걸고 맡겨라
  • 김종석 기자 / jskim118828@ktnews.com
  • 승인 2021.06.2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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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패자는 군주 자신이 아닌
승리를 이끈 조직 그 자체
업계에 만연한 오너 리스크
전문경영인의 합리적 판단을 믿고
불신물용 덕목을 키워라

장수는 군주에게 있어 버팀목이다. 한번 믿고 맡겼으면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패자(覇者)는 군주 자신이 아니라 휘하의 장수를 믿고 승리를 이끈 조직 그 자체다.

취재나 인터뷰로 섬유패션기업 대표를 만난다. 중견기업 오너도 있지만 대기업 출신 전문경영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경영실적이 좋은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업체도 있다. 

화학섬유 대표기업인 효성티앤씨의 공덕동 본사를 방문해 보면 여러가지로 많이 놀라게 된다. 대표이사 방은 상식을 뛰어넘어 구석진 곳에 크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공간이 매출 5조원이 넘는 실적을 관장하는 사령탑이고 구심체다. 티케이케미칼 대표이사는 구미 공장에 사장실을 두고 현장 경영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본사에서 지내는게 본인에겐 더 편할 일인데,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상식이 뒤집어진다. 이들 기업의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전문 경영인의 능력이 회사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 지표가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오너 리스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이 있다. 오너의 통찰력과 판단력이 기업을 글로벌 반열에 올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성 불가침의 힘을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인해 기업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자사 제품이 코로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면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결국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너 일가의 부정적 이슈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바닥을 쳤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오너의 생각과 의지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급기야 회사 주인이 바뀌는 시련을 겪었다.

여기에 주변을 두루 살피는 전문 경영인의 합리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면 결과는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으리라. 대기업은 오너가 전문 경영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한다. 반면 중견 중소기업은 오너 한 사람의 결정이 최종이 된다.

추진력이나 판단력은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복잡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철저한 전략만이 기업을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우리 업계에도 오너 한사람의 순간적 결정으로 사업이 뒤집어 지고 사람이 잘려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의 미래를 뒤바꾸는 오너 리스크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를 계기로 사회가 혁명 수준으로 바뀌었다. 재택근무로 인한 비대면 화상회의나 토론이 일상화되고 익숙해지면서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는 상상은 이미 불가해졌다. 유연함이 필요하고 변화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프로세스 혁신을 준비했던 기업은 코로나의 비대면 사태에도 흔들림 없이 사업을 진행한 반면 준비가 늦었던 기업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기업의 최종 목표는 끊임없는 미래 먹거리 창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지속가능 투자가 선행돼야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갈수 있다. 결국 투자가 이루어 지려면 오너의 결단이 있어야 되는데 오너가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없으면 파국을 맞게 된다.

오너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는 회사를 100년 반석위에 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혁신적인 사고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그것을 수용하기 쉽도록 유연한 조직문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유능해도 복잡다단해진 사회 경제로 인해 오너 1인이 혼자 모든 판단을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하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합리적인 전문경영인이 필요한데, 반드시 지켜져야 할 덕목이 불신물용(不信勿用)이다. 믿지를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쓴다면 믿고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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