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자기 만족의 시대…캐주얼 경계 넘는 명품
은밀한 자기 만족의 시대…캐주얼 경계 넘는 명품
  • 최정윤 기자 / jychoi12@ktnews.com
  • 승인 2021.08.28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로 대형 모임이 불가능해졌다. 남에게 과시하는 자리가 줄어들면서 가치 소비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품을 즐기는 시대가 됐다.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큼지막한 로고는 오히려 희소가치를 퇴색시키는 구세대 문화가 됐다.

젊은 세대는 흔히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불리는 명품 브랜드 외 신(新)명품에도 돈을 쓰기 시작했고, 그에 맞게 셀린느와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신명품 브랜드는 캐주얼룩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패션 디자인을 그려냈다. 신명품 브랜드가 주목하는 가을 키워드는 일상복과 전통 패션쇼 변화, 젠더리스, 작아진 로고, 형태 거대화다.

istock

■젊은층의 일상복
코로나19 비대면 체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명품은 저축한 돈이 많아 소비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어른들의 사치품으로 분류됐다. 10대가 명품관을 돌며 쇼핑하는 모습은 어색하다고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었다.

코로나19로 젊은 세대가 파티를 즐기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은 일상 외출에도 명품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후드티셔츠 위에 에르메스 시계를 차고, 발렌시아가 운동화를 신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이게 됐다. 더 이상 젊은 세대가 명품을 즐기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이들이 입는 명품 브랜드와 디자인이 ‘가장 트렌디하다’고 받아들여지게 됐다.

명품 브랜드는 이 수요에 맞게 화려함의 상징이 되는 대신 일상복이 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번 가을 셀린느는 여성 컬렉션에서 ‘중단된 젊음(youth interrupted)’을 주제로 젊은층이 주로 걸치는 후드티셔츠와 버킷햇, 볼캡까지도 제작했다. 젊은층이 주목하는 신명품 브랜드는 캐주얼 카테고리에 속하는 디자인 경계를 과감하게 넘어섰다.

옷과 액세서리, 가방은 고급스러운 일상복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차분하고 무거운 색상으로 채워졌다. 화려한 색채 대비 대신 단일 색상을 쓰거나 어울리는 톤을 일정하게 배치했다. 작은 꾸밈요소들은 매끄럽게 바꾸고, 커다랗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단순한 곡선으로 전체 형태를 만들었다.

■Z세대를 위한 전통방식 변화
10대에게 주목받는 신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을 주목하는 소비층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셀린느는 명품 브랜드 중 처음으로 Z세대의 놀이터인 틱톡에서 컬렉션 영상을 공개했고, 발렌시아가는 게임 형식으로 컬렉션을 공개했다. 패션쇼를 통해서만 컬렉션을 공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비대면으로 패션쇼 실시간 유튜브 및 트위터 공개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브랜드들은 사람들이 비대면으로 영상과 사진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사람들은 패션쇼장에 초대받아 강렬한 조명과 음악을 배경으로 모델들이 생생하게 걷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닌, 끝없이 모델들이 걷는 쇼를 지루하게 느꼈다.

신명품 브랜드들은 트렌드를 이끌고 명품에 관심갖는 1020세대를 위해 패션쇼를 편집할 필요를 느꼈다. 조금 더 '입고 싶은' 브랜드로 느껴지도록 일상적인 옷을 고급스러운 장소에서 멋지게 걸치고, 강렬한 인상을 주게끔 짧게 편집해 1020이 관심갖는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비대면 패션쇼는 일상복 디자인을 고급스럽게 느낄 수 있는 포멀(formal)한 장소를 배경으로 이뤄진다. 고궁의 정원과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장소에서 비대면 패션쇼를 열어 브랜드 가치를 포멀하게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젠더리스
남성복 컬렉션에서 쓰이는 소재와 핏은 여성복 컬렉션에서도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팔 아래 공간이 넉넉한 자켓과 몸에 달라붙지 않고 골반부터 발목까지 일자를 유지하는 바지가 반복돼서 등장한다. 지난 몇년간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 구분없이 남성복 디자인과 여성복 디자인을 교차해 적용해오던 젠더리스는 지금 누가 입어도 성별을 생각할 필요없는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젠더리스 디자인은 남성 모델이 안이 비치는 시스루 옷이나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디자인을 걸치고, 여성 패션 디자인에 주로 쓴다는 인식이 있는 분홍색을 적용하는 정도였다. 지금 젠더리스 트렌드는 단순한 색과 형태로 어느 성별이 입어도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가을은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이 입는 옷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아 성별 디자인 간 경계가 옅어졌다. 남성 모델은 팔 아래로 이어지는 원단을 일자로 유지하는 치마를 걸치고, 여성 모델은 정장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모델이 입은 드레스는 허리와 골반으로 이어지는 선을 덜 강조하고, 몸 곡선을 덜 드러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샤넬이 트위드 자켓을 남성용으로 출시했던 젠더리스 트렌드가 이어져, 남성 컬렉션에 사용하는 거친 질감의 소재를 여성복에 사용하는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자켓 소재와 질감, 형태 등을 남성컬렉션에서 차용해 특정 성별을 구분짓는 특징이 사라져가고 있다.

■작아진 로고
가방 가운데와 옷 전체에 눈에 띄게 박아넣었던 커다란 로고는 점차 그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로고를 패턴화한 모노그램은 색이 대비되는 정도를 줄였다. 짙은 갈색 바탕에 새하얀 색을 대비하거나 상의 가운데 상단에 커다랗게 로고를 그려넣는 방식으로 눈에 띄게 로고를 강조했던 트렌드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차분한 푸른색과 옅은 갈색으로 조화를 주거나 선글라스 옆테에 작게 장식하고, 옷 뒷면에 포인트를 주는 정도에 그친다.

옷 형태가 후드티셔츠, 니트, 반팔티셔츠처럼 일상에서 입는 캐주얼로 바뀌면서, 로고도 고급스러운 캐주얼을 나타낼 수 있도록 형태를 바꿨다. 명품 브랜드 로고를 아는 사람은 해당 브랜드 상품을 입고 있다고 눈치챌 수 있는 정도다. 대신 캐주얼과 구분할 수 있도록 소재와 봉제, 질감에서 차이를 두도록 고품질 상품을 만든다.

■색상 단순화와 형태 거대화
장식과 색이 단순해지고 로고 크기를 줄이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디자인을 큼지막한 크기와 길이로 포인트를 줬다. 자켓 길이는 허벅지를 덮고, 바지 너비는 넓어졌다. 어깨가 커보이도록 강조하거나 상체가 둥글고 커보이도록 설계한 옷이 자주 등장한다.

상품별로 주로 단일 색을 쓰거나 최대 두가지 색으로 작은 대비를 주고, 소재와 형태로 독특함을 어필한다. 매끄러운 비닐 소재를 쓰거나 각진 모양을 유지하는 트위드 소재, 미래적인 느낌을 주는 가죽 소재와 선글라스를 매치시키는 화보가 늘어나고 있다.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평범하지 않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번 가을은 '쿨함'을 보여주기 위해 각지고 긴 상의와 넓은 하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ktnews@ktnews.com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tnews@kt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