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8)] “반갑다, 에어컨 섬유”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8)] “반갑다, 에어컨 섬유”
  • 안동진 / djdj1959@naver.com
  • 승인 2022.06.0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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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매
냉장고와 에어컨은 ‘기화열’ 이라는 물리현상을 이용한 단순한 제품이다. 기화열은 일정 압력에서 어떤 물질을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시키기 위해 공급해야 하는 에너지이다. 증발열이라고도 한다. 분자의 운동은 고체보다 액체가 액체보다 기체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액체가 기체로 상변화가 일어나려면 추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주위의 열에서 확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열을 빼앗긴 주위는 차가워진다. 흡열반응 이라고도 한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상변화(相變化)를 일으켜 기화열을 발생 시키는 물질을 냉매라고 한다. 

최고의 냉매
냉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즉, 기화열을 최대치로 올리려면 냉매의 증발속도가 빠르면 된다. 팔에 물을 바르면 시원하다. 알코올을 바르면 차갑다고 느낀다. 암모니아를 바르면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얼얼해 진다. 각 냉매의 기화열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이들의 차이는 결국 증발 속도로 나타난다. 알코올의 끓는점은 65도로 물보다 낮다. 이 때문에 알코올의 증발 속도 즉 증기압이 더 커서 물보다 열을 더 많이 빼앗아 가는 것이다. 암모니아의 끓는점은 영하 43도 이다.

따라서 가능한 증기압이 큰 물질을 냉매로 사용하면 냉각 효과는 더 클 것이다. 프레온의 끓는 점은 무려 영하 40도 이다. 즉, 상온(실온)에서는 기체이다. 프레온 가스를 영하 40도 이하로 얼려 액체로 만든 다음 상온에 노출시켜 기화하게 만들면 주위에 얼음이 맺혀 하얗게 될 정도로 순식간에 증발하여 기체로 돌아간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하는 일은 전기를 이용하여 기체로 돌아간 냉매를 압축해 다시 액체로 만드는 단순한 작업이다. 오늘날 열사의 사막에 지어진 라스베가스 같은 도시를 가능하게 만든 두 냉방기계는 냉매와 압축기만 있으면 되는 극히 단순한 기계이다. 

섬유에 적용 가능한 냉매
같은 원리를 섬유에 적용할 수 있다. 단, 섬유는 에어컨이나 냉장고처럼 증발이 빨리 일어나는 냉매를 선택할 수 없다. 섬유와 의류에서 구할 수 있는 냉매는 물이 유일하다. 몸에서 흘리는 땀이나 주변에서 쉽게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냉매를 고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그것은 물리학이다. 증발은 그것이 액체이든 고체이든 표면에서만 일어난다. 따라서 증발 속도가 동일해도 만약 표면적이 더 크면 더 많은 양의 증발이 일어나므로 더 많은 열을 뺏을 수 있고 이는 결국 증발 속도가 빠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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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과 냉매
결과적으로 냉감 섬유를 설계하려는 우리의 목표는 섬유의 표면적을 가능한 크게 만드는 것이다. 섬유의 어떤 형태가 표면적이 클까? 물체의 표면적이 최소인 형태는 원형이다. 그에 따라 3차원 물체에서 가장 표면적이 작은 입체가 ‘구(球)’ 이다. 섬유처럼 길고 가느다란 입체라면 단면이 원형인 경우가 된다. 원형 단면 섬유보다는 타원 단면의 표면적이 더 크고 사각형 단면보다 삼각형 단면의 표면적이 더 크다. 그런 논리를 배경으로 탄생한 최대 표면적을 가진 최초의 섬유가 바로 쿨맥스(Coolmax)다. 

쿨맥스 단면은 납작한 땅콩 모양이다. 더 납작해 질수록 표면적은 더 커지지만 섬유는 실로 만들었을 때 쉽게 끊어지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을 인장강도(Tensile Strength)라고 한다. 따라서 표면적을 늘리기 위한 단면 설계는 한계가 있다. 단면 설계는 쿨맥스에 의해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여기서 표면적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는 ‘바이오미믹’이 필요하다. 

최대의 표면적 설계
북극곰의 털은 속이 비어 있는 일종의 중공섬유이다. 이는 극한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단열재인 공기를 털 내부에 가두기 위한 진화의 전략이다. (진화가 설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속이 비어 있는 털은 속이 꽉 찬 털에 비해 더 많은 양의 공기를 가둘 수 있고 더 가벼운데다 표면적도 훨씬 더 커진다. 따라서 쿨맥스보다 더 큰 표면적을 얻기 위한 다른 전략은 속이 비어 있는 중공섬유 쪽으로 향하게 됐다. 

중공섬유의 표면적을 키우는 방법은 중공률을 최대화 하는 것이다. 즉 내부의 비어 있는 공간을 되도록 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중공률이 커지면 섬유의 인장강도가 약해지므로 이 또한 한계가 있다. 한계 중공률에 도달한 중공섬유의 표면적을 더 크게 하기 위한 마지막 아이디어는 역시 장기간 진화가 진행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다. 

작은 창자(소장)가 하는 일은 음식물이 지나가는 일정 시간에 가급적 더 많은 영양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영양분은 오로지 창자의 표면을 통해 흡수되므로 창자의 표면적이 클수록 유리하다. 소장은 어떤 방법으로 표면적을 크게 만들었을까? 바로 굴곡이 있는 텍스처(Texture)한 표면이다.

소장의 표면은 평평하지 않고 주름져 있는데다 융털이라고 불리는 돌기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소장의 표면적은 플랫(Flat)한 표면에 비해 무려 1만배로 증가되었다. 융털은 양각으로 튀어나온 돌기라서 이를 섬유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만 반대로 음각의 형태로 텍스처한 표면을 만들 수도 있다. 달 표면처럼 크레이터(Crater)로 뒤덮인 표면은 평평한 표면보다 표면적이 훨씬 더 크다. 

중공섬유에 텍스처한 표면을 적용한 섬유가 바로 쿨코어(Coolcore)이다. 현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냉감 효과가 뛰어난 에어컨 섬유이다. 물론 기화열을 이용한 냉감 섬유는 냉매가 있어야 작동하므로 일반 의류보다는 스포츠 타월 같은 형태가 유용하다. 한 여름에 쿨코어 타월에 물을 적셔 목에 두르면 마치 얼음물을 목덜미에 끼얹은 느낌이 날 정도로 차갑다. 물론 옷으로 만들어 땀을 흘리면 시원하다 못해 춥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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