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옷과 가죽이 필요한 인간의 운명
[오피니언 기고] 옷과 가죽이 필요한 인간의 운명
  • 윤대영 수석전문위원 / yoondayyoung@hanmail.net
  • 승인 2023.10.1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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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체온 유지·상처 보호에 최적
산업혁명, 맨체스터의 직조기와 방적기서 비롯
옷의 기능은 눈부시게 진보

청바지, 美광부가 텐트용 천을 리벳으로 결합
복합 재질의 고기능 옷감, 재활용 어려워

독일의 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는 인간과 말이 어릴 때부터 생존 능력이 다르게 태어나는 이유를 연구했다.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몇 분 만에 스스로 벌떡 일어나서 걷고, 기특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뛰기 시작한다. 인간은 그렇게 못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기들은 태어난 후 바로 걷기는커녕 자기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옆집 애보다 뒤집는게 빠르면 천재 난 듯 손뼉 치며 신기해하는 부모들도 많다. 엄마는 아기들에게 쥐엄쥐엄과 도리도리, 짝짜꿍을 수없이 반복하며 동사를 먼저 가르친다. 사람답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말은 자기 새끼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동물 가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최고 품질의 옷의 재료였다. 질기고 부드러우며 숨을 쉬기 때문이다.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동물 가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최고 품질의 옷의 재료였다. 질기고 부드러우며 숨을 쉬기 때문이다.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망아지와 달리 아기들이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일어나 걷게 되는 것은 뇌 속 전두엽에 퍼져있는 신경망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갓 태어난 망아지의 전두엽에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 즉시 일어나야 한다는 욕구가 새겨져 있으나, 아기들의 뇌는 말랑말랑하게 비어있는 상태여서 오랜 시간 반복 학습을 해야만 뇌가 채워지고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생각이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면, 도구를 만들고 자연을 정복할 기계를 고안한다. 인간의 생각과 학습은 대를 이어가며 축적되고 전승된다. 체계적인 사회와 국가, 고도로 발전한 문명의 삶은 동물과 차별화된 인간의 특징이다.

미국 광부들이 입었던 텐트용 천이 청바지가 됐다. 1873년 상표디자인이 선명한 리바이스 청바지.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미국 광부들이 입었던 텐트용 천이 청바지가 됐다. 1873년 상표디자인이 선명한 리바이스 청바지.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어른과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신체 중 유일하게 큰 차이가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피부다. 대부분 포유동물의 새끼들이 어릴 때는 벌거숭이로 태어나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지만, 일단 성체가 되면 두꺼운 가죽과 털로 무장하여 웬만한 추위를 이겨낸다. 하지만 인간의 피부는 어릴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피부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물건에 살짝만 닿아도 피가 나고 햇빛을 잠시만 쬐어도 화상을 입는다.

유난히 얇은 가죽과 약한 피부로 태어나는 벌거숭이 인간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동물 가죽을 의복으로 만들어 입었다. 자기의 약한 피부를 동물 가죽으로 보강한 것이다. 부드럽고 질긴 동물 가죽은 추위를 막아주고 오래 쓸 수 있는 요긴한 재료였다. 체온을 유지하고 상처를 보호하기로는 최적이었다.

하지만 가죽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거나, 가축을 살상하는 일은 무척 번거로웠다. 대신 보다 싸고 가벼운 소재를 찾아낸 것이 바로 양털과 면화였다. 18~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도 작은 도시 맨체스터의 직조기와 방적기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가죽 대신 직조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람의 피부를 대신하고 가죽처럼 보호해줄 옷의 기능은 눈부시게 진보해왔다.

발수와 방수가 되는 옷은 고기능 다기능이나, 유지 관리가 까다롭고 폐기시 소각해야 한다.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발수와 방수가 되는 옷은 고기능 다기능이나, 유지 관리가 까다롭고 폐기시 소각해야 한다. 사진=윤대영 수석위원

무게는 비단처럼 가볍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옷감도 나왔다. 험한 일을 해야 했던 미국 광부들이 텐트용 천을 리벳으로 결합해 옷으로 입었던 것이 오늘날 청바지의 기원이다.

다운 패딩에 니트나 기모가 붙어 움직임을 편하게 해주는 키메라 기능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물은 막아주고, 내부의 땀은 배출해주는 고기능 옷감은 아웃도어 시장에서 기본이 됐다. 하지만 기능이 첨단화된 만큼 다 입고 버릴 때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부드럽고 질긴 가죽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물과 화학약품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수질오염이 심각하듯, 복합 재질로 된 다기능 고기능 옷감은 분리도 안되고 재활용이 어려워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

지난 주말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선산 벌초를 다녀왔다. 예초기를 메고 일하느라 겉에 묻은 얼룩을 손빨래로 주물러 지운 뒤 그늘에 말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랫단 안감에서 흰 가루가 잔뜩 묻어나와 베란다에 휘날린다.

세탁기와 세제 공부도 환경 공학만큼 치열하게 해야 할 판이다. 좀 편하게 살아보려 고기능 옷을 사서 입지만, 피부가 약하고 가죽도 얇은 인간으로 태어난 신세가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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