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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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트쿠튀르 패션의 명품화 '40년 외길' 고집

숭고한 사랑이 아름다운 세상 열어
유년의 따뜻한 추억, 평생의 자양분
“강박감없이 내려놔야 창의력 생겨”


기자와 인터뷰를 약속한 날은 함박눈이 내렸다(디자이너 이림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이림은 직무를 보는 탁자에서 일어나더니 쇼윈도 창가로 기자를 안내했다.

소담스런 눈이 보기 좋다며 샵 입구 쇼윈도 테이블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차를 마시자고 했다. “강박감이 있으면 창의력이 일어나지 않지요. 모든 일은 내려놓고 편안히 할 때 좋은 결과로 이어져요. 그러니까 인터뷰라 생각 말고 기자님도 편안하게 눈을 바라봐요.”

기자를 무장해제 시키더니 독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본인은 아마 5~6세 부터였다고 기억했다) 이림은 어른들을 졸라 영화를 보러다녔다. 1년 내내 극장에서 살다시피한 이림은 영화는 물론, 임춘앵국극단의 악극, 또 당시 귀했던 연극까지 두루 섭렵했다. 선생님, 매부의 무릎에서 다른 세상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꼈고 상상력과 감성을 키웠다. 내일이 시험이어도 영화는 꼭 섭취해야만 살 수 있는 자양분과 같았다. 중학교 3년간은 담임선생님의 무릎이 이림의 영화관 의자였다. 단속에 걸려도 선생님은 자애롭게 무릎을 내어주시고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작은 거인 이림은 순수하며 사랑을 할 줄 알고, 또한 당연히 받아 마땅한 선물로 생각한다. 그것은 몸이 아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일 뿐 자신의 인생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고한 데서 비롯됐다.

어머니는 오늘날 이림이 있기까지 세상은 무서운 곳이 아니고 따스한 곳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분이셨다. “어머닌 어려서부터 절 업고 다니셨어요. 넓은 논과 밭을 가로질러 가시면서 업힌 저에게 너를 살리기 위해 이 전답을 다 팔았다고 하셨지만 전혀 안타까워 하시지 않으셨어요.” 물론 학교도 업고 다니셨다. 초등학교 때는 모든 선생님이 이림의 어머니를 존경하고 ‘훌륭한 어머니’의 표상으로 여기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소풍 때였다. 사실 이림에게 소풍은 무리였지만 어머니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셨다. 이림을 업고 선생님께 드릴 도시락찬합을 들고 소풍을 따라 나서신 어머니. 담임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큰 짐 자전거를 구해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그 자전거에 방석을 높이 쌓아 이림을 앉히고 밀면서 소풍길에 올랐다.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도시락찬합을 싼 보자기를 들고 뒤를 따라 오셨다.

물론 이림은 영원히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평생 갖게 됐다. 또한 이때 담임선생님과는 훗날 더 소중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처럼 이림의 우주였고 세상의 통로였고 사랑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이림이 졸업식을 앞두고 선생님들께서 ‘훌륭한 어머니’ 상을 드리려 했으나 그 해 유방암을 앓으시던 어머니는 도저히 감을 수 없었던 눈을 감고 영면에 드셨다.

큰 누이의 아낌없는 사랑
이림의 또 다른 어머니는 큰 누이셨다. 평생 교직에 몸담아 오다 은퇴한 큰 누이는 아직도 가슴에 이림을 품고 산다. 이림이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담아 종종 발걸음을 하는 연세 드신 누이에게 아이처럼 “맛있었어, 더 해다줘요”하고 무심히 툭 내뱉는다. 그 말에 큰 누나는 아직도 소녀처럼 웃으며 좋아하신다. 싱싱한 게를 사기위해 차를 몇 번 갈아타고 멀리 바닷가에 다녀왔다고 했다.

어느 날 버스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차창밖으로 누나! 하고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단다. 사람들도 쳐다보고 본인도 두리번 거리다 보니 ‘이림’이 주변은 아랑곳 않고 반갑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큰 누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큰 누나 역시 유년기와 사춘기의 추억은 아픈 동생과 함께 한 것들이다. 한참 놀고 싶은 나이, 동네 친구들의 고무줄 놀이에 가면 끼워주지 않았다고 했다.

항상 동생을 업고 있었으니 동작도 느렸고 편을 갈라 놀이를 해야 하는데 이림 때문에 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동생을 업고 있어서 좋았어요. 힘들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구요” 아직 웃는 모습이 고우신 누이는 반백의 이림을 어릴때 처럼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림은 정갈하고 솜씨좋고 마음씨 좋은 어머니와 누이 덕에 최고의 음식을 먹고 단정한 옷을 입었고 문화, 예술을 만끽하면서 구김없이 성장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오로지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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