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 특별기고-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 피렌체 패션산업의 경쟁력에서 배운다
[창간 32주년 특집] 특별기고-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 피렌체 패션산업의 경쟁력에서 배운다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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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중부의 아르노(Arno) 강은 서쪽으로 흘러 지중해의 리구리아 만에 이른다. 이탈리아 반도의 등뼈인 아펜니노산맥에서 시작한 아르노강 유역은 일찍부터 풍요한 농업지역으로 밀·포도·올리브 등의 생산이 많아 고대 로마 문명의 전신이었던 에트루리아 문명이 탄생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곳을 토스카니지방이라 부르는데 풍부한 농산물과 발달한 산업,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사진 좌 :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토스카니지역은 일찍부터 풍부한 농산물 외에도 제련업, 금속공예 등이 발달해 피렌체, 시에나, 피사, 루카 등이 주요도시로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오늘날 토스카니지방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탄생지로 알려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피렌체가 역사책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59년 카이사르가 로마영역을 반도의 북쪽으로 확장하면서 피렌체를 토스카니의 식민지 수도로 삼은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카이사르는 이 마을을 플로렌치아라 불렀는데 ‘꽃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가 도시전체를 내려다보면 다양한 붉은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특히, 중심에 위치한 두오모 성당은 그 이름처럼 한 송이 백합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진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인 두오모 성당과 시뇨리아 광장, 우피치 미술관 등 문화유산이 빼곡하다. 또한 역사적 인물도 많이 배출했는데 단테와 마키아벨리, 메디치가문과 더불어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근간은 14세기 지오바니 디 비치(1360-1429)가 메디치가문을 창설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코시모 I세와 로렌초, 알렉산드로 등 메디치가문을 이끈 지도자의 활약에 힘입어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의 강소국들 중에 으뜸이었다. 로렌초의 딸이었던 카테리나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Catherine de’ Medici of France)가 되면서 메디치가의 위상은 절정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피렌체는 레오 10세와 클레멘트 7세의 교황을 배출하면서 유럽최대의 명문가로 떠올랐다.

피렌체의 번영은 메디치가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12세기부터 발달한 금융업에 바탕으로 두고 있다. 피렌체에서 일찍이 금융업이 발달한 것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길드 중에 금융업조합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길드는 10세기 중엽 내지 11세기 이후 유럽에 있어서의 상업 및 수공업의 독점·배타적인 동업조합을 말한다. 길드는 도제제도를 토대로 조직되며, 조합원의 경제적 공존과 보호를 목적으로 했다.

피렌체의 경우, 12세기 전반부터 수공업 길드가 처음으로 조직됐고, 13세기 후반부터 확산됐으며 1283년에는 주요 7개의 대형 길드가 이미 틀을 갖추고 있었다. 이중 가장 먼저 발생한 것이 대형상인조합(Calimala)이었으며 이어 양모조합(Arte della Lana), 실크조합(Arte di Por Santa Maria), 의료인조합, 금융조합, 장례업조합, 법률가조합 등이 탄생했다. 당시 5개의 중간규모 길드, 9개의 소규모 길드가 조직된 것으로 봐서 피렌체에는 13세기에 이미 21개의 전문길드가 조직돼 있었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융조합으로, 피렌체의 경제력은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화폐에서 나온 것임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피렌체에서 발행하는 동전을 ‘플로린’이라 불렀는데 금 3.5g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기축통화였다. 당시 피렌체는 여러 나라에 흩어진 지점으로부터 안정적인 금의 공급이 가능했기에 플로린의 가치를 보장할 수 있었으며 1253~1523년 유럽에서 국제통화로 사용됐다.

14세기 초, 유럽의 150개 이상의 소국가들이 공인된 플로린을 주조할 정도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치르기 위해 피렌체은행으로 플로린을 대출받을 정도였다. 두 나라중 하나는 승자일 것이니 대출금상환 걱정은 애초부터 없었다. 피렌체의 최대가문인 메디치는 유럽의 주요도시에 은행지점을 개설했고 14세기 초 피렌체에만 80개의 은행이 번성했다. 오늘날 미국 달러가 하는 역할을 당시에는 피렌체의 플로린이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렌체 경제의 번영을 뒷받침하고 있던 또 다른 것은 양모와 실크를 바탕으로 한 섬유패션산업이었다. 양모조합과 실크조합은 섬유와 패션이 관련된 세계최초의 길드형태로 피렌체산업의 핵심이었다. 14세기에는 피렌체의 양모, 실크조합이 큰 세력을 형성해 행정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카테리나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면서 피렌체 패션은 당대 유럽 최고 패션지역이 됐고 두 조합의 명성은 대단했다. 다른 나라의 왕비나 귀족들이 모두 카테리나의 드레스와 장식을 흉내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피렌체의 패션산업의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강력한 통화를 바탕으로 한 도시의 경제력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피렌체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패션의 중심지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게다가 메디치가문의 예술 후원정책으로 피렌체에서는 치마, 드레스, 보석, 섬유, 장식 등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둘째, 세계 최초로 구성된 양모와 실크조합이 전문성을 발휘한 것도 주요요인이다. 당시 피렌체의 두 조합의 모델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으로 전파돼 많은 뤼벡, 리용, 맨체스터 등 섬유도시를 탄생케 했다. 그러나 그들이 피렌체의 명성에는 따르지 못했던 것은 피렌체가 보다 전문화된 생산구조와 협동을 바탕으로 하는 상생의 정신이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셋째, 창조적 발상으로 패션산업을 예술과 융합하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르네상스시대의 피렌체는 도시국가 규모에 비해 경제력은 뛰어났으나 군사력과 정치력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신성로마제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피렌체가 가진 큰 강점은 르네상스문화를 선도하는 컨텐츠가 풍부했고, 그 바탕에는 예술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만들어진 회화나 조각에서 나타나는 패션은 당대 최고의 디자인과 기술을 담고 있었다.

피렌체의 섬유패션산업도 큰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흔히 17~20세기는 패션의 암흑기라고 불린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예술을 중시하던 종전의 패션스타일에서 대량생산제품을 중시하는 경제구조로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규모 가계수공업에 의존하던 섬유·패션 길드는 17세기에 이르러 붕괴되기 시작해 산업혁명의 진전과 더불어 거의 소멸하고 만다. 영국의 산업혁명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 피렌체는 섬유·패션산업이 쇠퇴함으로 소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21세기가 되면서 피렌체의 패션산업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 부활의 내면을 살펴보면
첫째, 명장들의 탄생이다. 지역출신인 페라가모의 구두가 1928년 뉴욕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피렌체도 덩달아 세계적인 명성을 다시 얻게 됐다. 또한 피렌체에 본사를 둔 구찌가 등장해 피렌체의 명성을 반석에 올리게 됐다.

둘째, 패션쇼를 처음 연 것이다. 2차대전이후 시들해지던 패션업을 1951년 바티스타 지오르지니가 자신의 집에 미국의 의류 수입업자들을 초청해 멋진 패션쇼를 만들었다. 세계최초의 패션쇼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고급패션의 중심지로 피렌체의 위상을 드높여 줬다. 지금도 피티궁전에서는 일년에 두 번씩 패션쇼가 열리는데, 주요도시들도 이를 모방해 패션위크를 개최하고 있다. 덕분에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패션명가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오늘날 섬유와 패션산업의 중심지라고 하면 누구나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를 떠올리게 된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소비인구가 많고 상업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1970년대 베르사체, 아르마니, 돌체&가바나 등의 명품들이 밀라노에 자리잡으면서 밀라노가 세계적인 패션중심지가 된 반면, 피렌체의 이미지는 약화되고 있다. 또한 웬만한 도시에서는 패션위크를 개최해 피렌체가 가진 특이점이 거의 없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의 패션산업은 인구 35만 으로 놀라운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피렌체가 가진 패션산업의 경쟁력은 제품의 차별화에서 나온다. 1970년대부터 정교한 손바느질을 기초로 한 고급의상(Haute couture)이 쇠퇴하고 기성복(pret-a-porter)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것은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방식으로 이런 추세를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렌체에서는 고급패션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한다는 판단으로 지금도 유명 디자이너의 본점이 20여개나 자리잡고 있다. 모두가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패션에 집중할 때 피렌체는 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드는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다.

둘째, 산업배후기지로서 경쟁력이 뛰어나다. 피렌체와 서쪽 프라토를 잇는 산업단지는 기계, 자동차 부품공장들도 많지만 고급가구, 공예, 유리제품, 가죽, 보석, 복제미술품 등을 생산하는 산업단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1990년대 건설된 이 지역 산업클러스터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됐으며 ‘Third Italy’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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