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 대담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신년특별 대담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 한국섬유신문 / 김임순 iskim@ktnews.com
  • 승인 2009.01.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유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성장산업”

의류 ‘글로벌 경영의 귀재’ 평가
수출·내수 아우르는 무적 함대

“디자인 고급화도 중요하지만
고품질 제품 양산기술은 기본”

㈜ 영원무역(대표 성기학)은 ‘노스페이스’ 등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의 생산 파트너다. ‘노스페이스’ 외에 ‘나이키’·‘폴로’·‘LL Bean’·‘파타고니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최고급 브랜드의 생산을 맡고 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다카, 중국 칭다오, 베트남 남딘(하노이 근교)등지에 10여 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고용한 근로자 6만여 명 국내 직원 7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1980년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지어 해외에 첫 진출했다. 스리랑카엔 셔츠 공장이, 온두라스에는 여성복 공장이 이미 진출하고 있어 방글라데시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실업률 증가와 정치적 불안 등으로 공장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방글라데시는 무엇보다 유럽시장 접근이 용이했다. 수출 주요지인 스칸디나비아 쪽 판매에 무엇보다 최빈국가라 非쿼터 지역이라는 장점이 컸다. 해외로 나간 것은 인건비 문제만은 아니었다. 시장 점유율과 미래 ㈜ 영원의 생산지역 포트폴리오 측면이 컸다.
全세계 공장 10여 개를 운영하고 있는 ㈜ 영원무역은 현지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기술자들을 보내 운영하는 단기적 전략보다 소수 인원을 보내 현지에서 직접 키우는 장기적 전략으로 진행, 성공하고 있다. 수출뿐만이 아니다. 내수사업도 남다른 경쟁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제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노스페이스’를 국내 도입, 판매하기 시작한지 11년만인 지난해 매출 4000억 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최근 미국 발 금융경색으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영으로 성공하고 있는 ㈜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을 만나 섬유패션업계 리더로써 고견을 들어봤다.


-초창기 해외진출이 쉽지는 않았을 것인데.
“사업하는데 안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을성이 많이 필요합니다. 중국·베트남은 진출한 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중국이 14년째, 베트남이 6년째 됩니다. 모두 지금은 영어교육이 일반화돼 있어 좀 쉽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상업용어가 모두 영어이기 때문에 저희로써는 비교적 용이하게 접근했습니다.”


-방글라데시 공장은?
“직원 3만5000명 가운데 99.9%가 현지인 입니다. 공장에 고정적으로 파견돼 있는 한국인은 15명 정도입니다. 그것도 신제품 출시 때나 특수기술이 필요한 시기에 국한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100여 명을 한국에 데려와 교육 했습니다.”


-글로벌 경영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곳에도 공장이 있지요?
“저희 제품을 보면 생산은 중·후진국에서 하고, 판매는 선진국 시장에서 합니다. 우리는 1980년대에 중남미의 자메이카에 진출했습니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겁니다. 방글라데시는 유럽, 자메이카는 美洲(미주) 시장을 목표로 했지요. 방글라데시 공장의 매출이 증대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그 나라의 정치적인 여건을 고려해 중국·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확대했습니다.”


-해외 공장을 세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항만·전기 등 인프라 문제, 행정적인 부패가 가장 난관이죠. 시간이 걸려야 극복이 됩니다. 우리는 빨리 공장을 세워 생산라인을 가동해야 하는데 그런 요인들로 인해 지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출국의 부패정도는 어떻습니까?
“베트남이 비교적 덜합니다. 중국은 행정적 규제, 일반적 규제가 심해요. 자신들이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밀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견제가 심할수도 있습니다. 중국·방글라데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기업 운영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기업이 사회복지 기능을 수행하고, 연금보험 등을 포함하면 인건비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가격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방글라데시 공장은 면세지역에 있어서 법인세가 10년 동안 면제됩니다. 10년 동안 세무간섭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무간섭을 한다면, 저희는 노하우가 없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방글라데시로서는 그런 정책을 잘 만들었던 거죠. 방글라데시는 부패와 인프라 부족으로 더 발전하지 못했어요. 교육받은 중간 관리자들이 도움을 줬습니다. 시간은 많이 걸렸습니다. 해외투자에선 성공한 경우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어떤 상품을 만듭니까?
“대부분 의류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상위 5% 안에 드는 고급품입니다. 우리는 세계 유명 브랜드와 거래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나오는 제품이 평균적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것보다 품질이 높습니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이제 브랜드를 보고 사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를 보고 사지 않습니다.”


-세계시장이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섬유 패션 환경 어떻게 보십니까?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금융긴축으로 인해 이미 자동차나 소비재 판매가 어려워지기 시작 했고, 그다음 여파가 어디로 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변화를 도모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미 12월초에 ‘노스페이스’ 겨울상품은 모두 팔렸습니다. 지난해 경우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기본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올해는 소비가 적극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 계획을 세우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소비는 소비자가 결정을 합니다. 다만 불경기속에서도 국내 교육비는 줄지 않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나 리서치 매칭을 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소비자를 긴밀성을 가지며 그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나가야 될 것입니다.”


-최근 ‘노스페이스’와 경쟁관계인 국내 유명 스포츠 의류 생산업체 임원을 만났더니, ‘노스페이스에 밀려 맥을 못 춘다’고 아쉬워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위탁판매를 하지 않고, 점주가 직접 물건을 사가서 판매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시장 점유율이 더욱더 신장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노스페이스와 나이키만 이런 판매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압니다.”


-섬유산업 후발주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큰 리테일러나 유명 백화점과 비즈니스를 안 하고, 남들이 싫어 하는 옷을 만들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섬유분야의 지난 수십년 혁신중 많은 것이 우리 회사에서 시작 됐 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섬유회사와는 성장 역사가 좀 다릅니다. 복잡하고, 어렵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옷들을 외국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 낸 겁니다.”


-다운제품이나 기능성 의류를 뜻하는 군요.
“평범한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잘 팔리면 제일 편한 사업이죠. 이미 그런 분야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었어요. 김우중 회장이 했던 와이셔츠 공장이라든지. 거기에 뛰어들어 경쟁할 필요는 없었죠. 저희는 다른 걸 했죠. 처음 시작할 때 오리털 제품, 복잡한 스키웨어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모두 그걸 꺼렸어요. 돈이 안 되는 비즈니스였으니까요.”


-1980년대 후반, 섬유산업 사양화론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가 모두 섬유 강국입니다.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키우고, 고부가가치화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 했다면 돈도 많이 벌고 섬유산업도 더욱 발전했겠지요. 우리가 세상을 너무 흑백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섬유산업에서 잘될 부분이 있고, 안 될 부분이 있는데 ‘섬유는 모두 끝났다’고 판단을 해요. 정부당국이나 산업계의 리더들이 성급한 결정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1980년대에 정부가 저임금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무조건 10만원이상 월급을 주라’고 강요했습니다. 10만원 월급을 못 주는 회사는 없어져도 좋다는 뜻이죠. ‘월 급여 최소 10만원을 줄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동원하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할 테니 따르라’고 했어야 한 겁니다. 상황을 오도한 거죠. 섬유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정치적 해결을 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돈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하고, 꼭 돈이 필요하면 그때 자금을 동원해야죠. 정책 자금을 서로 받아서 아무데나 써버리면 산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섬유산업을 방치 했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재봉이라는 게 시내에서 직원 수십 명이 하는 사업이거든요. 소규모 공장들을 온갖 규제를 다 해서 도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ktnews@ktnews.com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tnews@kt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