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산업에 포스트 코로나 이끄는 ‘제3의 물결’이 온다
명품산업에 포스트 코로나 이끄는 ‘제3의 물결’이 온다
  • 최정윤 기자 / jychoi12@ktnews.com
  • 승인 2021.09.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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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선망을 자극하던 명품, 모두의 상품으로 선회

2000년대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잇백(It Bag)'이었던 펜디 바게트백을 만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는 17년동안 발렌티노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디올 총괄 디자이너가 됐다. 디올 역사상 최초로 여성 단독 총괄 디자이너가 탄생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의 옷으로 화려한 디올 커리어를 시작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 티셔츠.
사진=디올

■사회적 메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명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디올 데뷔작인 2017년 봄 레디투웨어 패션쇼에서 흰 티셔츠 위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는 문구를 인쇄했다. 이 문구는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2012년 영국 TEDx에서 이야기했던 강연제목이다. 패션쇼에서 사회적으로 여성이 평등할 권리를 주장하는 메세지를 던지면서 패션에 크게 관심없는 대중에게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당 티셔츠는 가수 리한나(Rihanna)를 포함한 여러 유명인들이 입으면서 한층 더 존재를 알렸다. 새하얀 바탕 위에 문구가 프린트된 간단한 티셔츠지만 명품 브랜드가 갖는 가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디올은 이 티셔츠 한 장에 109만원이라는 가격을 매겼음에도, 이 티셔츠를 입으려는 사람들은 많았다.

패션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외치는 사회적 메세지와 ‘해야 한다’는 권유형 문장은 사람들에게 반감이 아닌 ‘힙함’으로 다가왔다. 티셔츠가 판매된 2017년 10월, 미국 영화 감독 하비 웨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비위 논란으로 시작된 위계에 의한 성폭행 사건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SNS에서 바이럴로 퍼지면서 다시 한 번 관심받았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명품의 실용성에 대한 고민을 가격이 아닌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만든 옷은 정장 차림만 입장 가능한 모임의 드레스코드에 맞는 드레스가 아닌, 청바지와 가죽자켓에도 어울리는 티셔츠였다. 옷장에 걸린 바지와 편하게 매치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티셔츠는 오히려 ‘디올’이라는 고급스러운 명품 브랜드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작용을 했다.

■매스티지 전략의 실패
2000년대 명품에 대한 선망과 수요는 2010년대 대중적인 가격의 명품 세컨브랜드를 만드는 매스티지(masstige,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감성적인 만족을 동시에 얻는 소비경향) 전략으로 해결되는 듯했다. ‘누구나 살 수 없는 명품’이라는 브랜드 지위를 유지하면서,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대중적인 가격의 브랜드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뉴럭셔리’로 등장했던 매스티지 브랜드는 고급스러운 브랜딩과 대중이 살 수 있을만한 가격 포지셔닝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패션에 이어 고디바와 스타벅스처럼 고급스러운 브랜드는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시계를 차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이 멋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중은 브랜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매스티지 브랜드 상품을 일상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고, 매스티지는 기업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 됐다.

그러나 매스티지 전략은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브랜드의 가치까지 함께 소모하는 동반 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명품의 지위와 매출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방법이 매스티지 전용 세컨 브랜드가 원 브랜드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현상을 가져온 셈이다. 명품 브랜드는 일상복을 판매하는 캐주얼 브랜드와는 차별점을 두는 동시에 매출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격대를 낮추는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대중이 값비싼 명품을 직접 사게 만들 방법을 고심해야 했다.

■흐려지는 명품 경계
명품 브랜드들은 90년대부터 디자인에 조금씩 서브컬쳐라 불리는 대중문화의 일부를 떼어 도입했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고수하고자 했다. 여성복과 남성복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일상복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만들고, 파리와 밀라노에 와야만 6개월 먼저 볼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명품은 곧 한정된 장소에서 제한된 소비자를 위한 상품을 만드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형성된 형식이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명품이니, 명품 브랜드가 미래를 예언하는 키워드를 제시하면 바이어와 소비자는 이를 체험하고 소비하러 찾아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품 브랜드들은 대중에게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 좀 더 과감한 색상과 형태를 도입하더라도 대중이 길거리를 걸을 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지는 않았다. 색채대비가 강렬한 옷을 만들고 화려한 장신구를 추가하는 경향이 강해졌을 뿐이었다.

201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명품 브랜드들은 서서히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의 매스티지성 뉴럭셔리가 아닌 힙한 감성을 유지하는 뉴럭셔리 브랜드가 떠오르면서다. 밀레니얼과 Z세대를 묶은 MZ세대가 적극적으로 럭셔리에 관심갖고 힙함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경향이 생겨난 시기인 2019년과 맞물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보였다.

구찌Ⅹ도라에몽.
사진=디올

■소비자 찾아가는 명품
코로나19 이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순식간에 형태를 바꿨다. 미키마우스를 옷과 시계에 넣었던 구찌는 대표 일본 서브컬쳐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을 데려왔다. 신발은 청키(두툼한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아웃솔(바깥창)이 달린 운동화와 편하게 신는 구두인 로퍼였고, 가방은 상체를 가로질러 메는 크로스백이었다.

노트와 편지지, 메모장도 함께 판매했다. 그 다음으로는 Z세대가 온종일 뛰어논다는 메타버스 게임 제페토에서 새 옷과 신발, 가방이 나올 때마다 등록했다. 제페토에서 유료 화폐로만 살 수 있는 구찌 아이템은 제페토 유저들이 너도나도 걸치려고 열심히 이벤트에 참가해 유료 화폐를 모으는 계기가 됐다.

정형화된 디자인과 마케팅 방식을 벗어던진 구찌는 순식간에 주목받았다. 명품이 대중에게 성큼 다가선 모습이 낯설다는 반응과 조용히 구매해서 SNS와 블로그에 자랑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낯설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구찌의 대중적인 행보가 장기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 지켜보겠다며 관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내 명품 브랜드의 일상화 트렌드가 여기저기 눈에 띄면서, 새로운 국면에 누가 먼저 적응하느냐를 앞다퉈야했다.

■가격대 아닌 디자인으로 가치 유지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디올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나갔다. ‘입고 싶은 옷’이라는 개념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만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2000년대 여성복은 여성의 몸매를 부각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형태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다양한 원단과 소재, 부자재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졌던 가느다란 허리와 굴곡 있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실루엣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 브랜드 상품을 산 사람만이 입을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함을 디자인에 감췄다. 일상복과는 한 눈에 차이가 나고, 일 년에 몇 번 입을 수 없는 특별한 옷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2020-2021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사진=디올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과 어울리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위주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다. 20-21 가을 겨울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여성복을 보여주는 옷과 가방, 신발로 이뤄졌다. 패션쇼에서 자켓과 넥타이, 헐렁한 긴바지와 티셔츠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프린지(숄 끝에 달린 술) 장식 스커트를 보였다. 가방은 넓은 끈을 달아둔 크로스백과 들고 다니기 편한 큼직하고 네모난 토트백을 제안했다. 

디올 측은 이 패션쇼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제시하는 페미니즘적 비전을 반영했고, 역동성과 여성 해방, 자기주장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몸 실루엣을 드러내는 방법 또한 시스루 원단을 쓰거나 팔, 다리 부위를 과감하게 잘라낸 조끼나 숄 형태를 도입해 표현했다. 새로운 패션쇼였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2017년 봄 컬렉션에 등장했던 바(Bar) 자켓은 블랙니트 소재로 재해석해 넥타이와 매치했고, 1970년대의 쿨함과 남성미를 반영해 셔츠 드레스와 캡모자를 제작했다.

2021 가을 레디투웨어.
사진=디올

상하이에서 열렸던 2021년 가을 레디투웨어 컬렉션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빌렸다. 네온사인 색이라 불리는 애시드 컬러(acid colors)와 디스코볼의 반짝임을 주제로 점프수트와 자켓, 롱스커트, 양말과 플랫슈즈를 만들었다.

앞선 컬렉션이 1970년대의 향수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2021년 가을 컬렉션에서는 1950년대의 컨셉을 재해석했다. 베레모와 야구점퍼, 점프수트, 조끼, 아노락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샌들에는 벨크로를 달아 편하게 신을 수 있고, 편하게 멜 수 있는 사이즈의 가방을 매치했다. 몸에 달라붙지 않는 넉넉한 형태의 상의와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데뷔작부터 여성주의에 초점을 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여성복과 남성복 경계를 디자인과 사회적 메세지를 통해 흐렸다. 대신 디올의 색을 흐리지 않고 지속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2021년 가을 여성복 컬렉션에서는 50년대의 실험적인 디올 아카이브에서 패턴과 자수를 꺼내 단순화시키고, 크거나 작은 형태로 제작해 디올의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썼다.

대신 팝아트적인 필터를 씌워 형광색을 쓰거나 반짝이는 소재를 써 신선함을 표현했다. 락밴드가 직접 공연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쇼가 진행됐다. 인터뷰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성장배경이었던 팝아트를 디올의 50년대 오락적인 요소에 결합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19 거리두기가 바꾼 소비문화
코로나19가 가져온 거리두기는 대부분의 브랜드 전략이 브랜드와 바이어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 이전까지 브랜드가 트렌드를 예측해 상품을 만들고, 바이어는 그 상품 중 잘 팔릴 만한 상품을 예측해 구입했다. 소비자는 가게에 방문해 바이어가 고른 상품 진열을 보고 샀다. 온라인 플랫폼과 유통처가 늘어나도 옷을 살 때가 되면 백화점이나 부띠끄에 들러 구매하는 게 보편적인 분위기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강력한 전파력으로 가까이에서 숨쉬기만 해도 전염됐기 때문에, 각국 정부들은 사람들의 활동을 최대한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모임에서 자랑할 수 있는 옷을 사는 대신 금세 집밖에 나갔다 올 수 있는 후드티셔츠와 조거팬츠를 샀다. 사람들은 옷에서 효율성을 따지게 됐다. 예쁜 옷과 편한 옷은 분리돼있다는 인식은 코로나19를 만나 하나로 합쳐졌다. 사람들은 이제 예쁘면서 편한 디자인을 한 벌의 옷에서 모두 추구할 수 있기를 원했다.

게다가 공식 석상에 모이는 일도, 동네 백화점에 들러 옷을 사는 일도 사라졌다. 옷을 직접 만지고 입어볼 수 없고, 매장 인테리어와 진열이 주는 분위기를 체험할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상품을 온라인에서 주문했고, 오프라인을 위주로 유통했던 브랜드는 온라인 세상에 적응해야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코로나19에도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경험형 매장으로 변신했고, 온라인 페이지는 한층 더 소비경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됐다.
명품 브랜드들도 더 이상 소비자가 커다란 쇼윈도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마네킹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난해에는 커진 한국 명품시장에 주목해 에르메스와 까르띠에, 프라다가 한국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이하 공홈)를 열었다. 유튜버와 협업해 공홈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언박싱하는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적극적 움직임
이들은 최종사용자(엔드유저)에 해당하는 소비자가 선택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랜드 상품을 살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온라인 홈페이지 뿐 아니라 패션쇼도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브랜드 정수를 보여주는 패션쇼도 매년 의례적으로 열리는 패션위크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셀린느는 최초로 2021년 봄 남성복 컬렉션 패션쇼를 열었고, 디올은 밀라노와 파리가 아닌 상하이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상하이 미술관인 롱 뮤지엄 웨스트 번드(Long Museum West Bund)에서 거울처럼 반짝이는 디스코볼과 레오파드 무늬로 장식한 전시장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브랜드들은 상품을 살 돈과 의향이 있는 아시아권에 직접 방문하거나, 브랜드 상품에 실제로 관심있는 소비자가 있는 플랫폼에 진출했다.

한 각도를 비추던 카메라는 드론으로 여러 각도에서 옷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각도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패션쇼 영상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게 빠른 화면 전환과 짧은 상영시간으로 편집됐다. 소비자가 조금 더 흥미를 느끼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위해 브랜드들은 빠르게 새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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