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1)] 면의 어두운 미래(1)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1)] 면의 어두운 미래(1)
  • 안동진 / djdj1959@naver.com
  • 승인 2022.02.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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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하는 5000만종의 생물 중, 의류에 사용 가능한 천연소재는 면, 모, 마, 견 4가지뿐이다. 그만큼 의류소재가 요구하는 성능과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면은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 사용된 소재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바로 섬유장(Fiber Length) 때문이다. 면 섬유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에 불과하다. 이토록 짧은 섬유를 수백 미터 길이의 실로 만드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면으로 만든 원단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형성했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여자들의 드레스가 일시에 면 소재로 바뀌는 소동이 있었고 결국 자국 섬유산업 보호를 위해 면으로 만든 드레스의 착용을 금지하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래도 몰래 숨어 입었다.)

마는 인류 최초의 소재였지만
면이 나타나기 전에 사용되던 천연섬유는 마이다. 마는 섬유장이 길어 실을 뽑기는 쉬웠지만 뻣뻣하고 열전도율이 높아 차갑고 레질리언스(Resilience)가 나빠 쉽게 구겨진다. 균제도(Evenness)가 떨어져 원사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 원단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매듭처럼 슬러브(Slub)도 형성돼 있다.

지금은 이런 단점을 ‘슬러비(slubby)’ 라는 하나의 트렌드(trend)로 승화시켜 빈티지 효과를 강조하거나 심지어 합섬을 천연섬유처럼 보이게 하는 단서로 사용하지만 그건 곱고 균일한 원사로 만들어진 매끄러운 원단이 흔할 때의 얘기인 것이다. 마직물로 만든 옷은 품위가 떨어졌다. 저밀도가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섬유가 굵어 면같은 가늘고 고운 세번수 원사를 만들 수 없다. 결정적으로 열전도율이 높아 겨울에는 뼈저리게 차갑다.

슈퍼스타 면화
면은 단조로운 소재로 궁핍한 세상에 등장한 슈퍼스타이다. 태생이 백옥처럼 하얀 데다 마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섬유가 가늘어 200수 이상 세번수 원사를 뽑을 수 있다. 이런 원사로 제직된 원단은 품위 있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순도 98%의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진 면은 마에 비해 균제도(Evenness)가 뛰어나 합성섬유로 만든 원단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매끄러운 원단을 만들 수 있다.

istock

마는 딱딱해 피부를 쓸리게 하고 양모는 피부를 찔러 가렵게 하지만 면은 매끄럽고 부드럽게 감기며 피부에 어떤 자극도 발생하지 않는다. 무균상태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외래물질이 바로 면이다. 액체이든 기체이든 탁월하게 습기를 흡수해 언제나 쾌적한 습도를 유지한다. 레질리언스가 울 만큼 좋지는 않지만 마처럼 극악하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질기고 마찰에도 강하다. 자외선에 잘 견디는 것은 물론 상당한 고열에도 버틴다. 세탁하기도 쉽다. 가격은 모든 천연소재 중 가장 저렴하다.

수많은 장점에 힘입어 면은 세상에서 가장 범용성이 뛰어난 의류 소재가 됐다. 면은 모든 복종에 사용된다. 셔츠, 바지, 블라우스, 드레스는 물론 아우터웨어, 액티브웨어 심지어 슈트도 만들 수 있다. 속옷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충전재로도 쓸 만하다. 다운 자켓도 코팅없이 만들 수 있을 정도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파일럿이 입었던 천연 방수기능이 있는 벤타일(Ventile)도 면이다. 군인들의 배낭도 방수 군용 텐트도 처음에는 모두 면이었다. 

반 환경 섬유 ‘면’의 미래는 
그러나 면의 미래는 어둡다. ‘서스테이너블(Sustainability)’ 인류 역사상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생소한, 하지만 강력한 트렌드, 아니 거부할 수 없는 ‘패션헌법’이 쓰나미처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7000년 패션 역사를 전혀 다른 스토리로 써야할 정도이다. 이제 시즌 2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천연’과 ‘서스테이너블(Sustainability)’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한다. 천연 유래 소재는 친환경이며 건강에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100% 천연인 담배는 물론 비만의 주범 옥수수도 청정 대나무도 이와 거리가 멀다. 같은 선상에서 목화도 친환경섬유 일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면은 대표적인 반 환경 섬유이다. 1년생 관목인 목화는 기후에 예민하고 경작하기 까다로운 식물이다.

곤충들도 면을 좋아해 벌레 때문에 어마어마한 농약을 퍼부어야 한다. 전세계 농약의 25%가 목화밭에 뿌려진다. 오가닉 코튼(Organic cotton)은 구세주가 될 수 없다. 대다수 유기농 식품이 그런 것처럼 혹독한 가격은 가장 중요한 면의 구매 당위성을 말살해 버린다. 면은 다양한 장점을 지닌 사랑스러운 소재이며 인체와 조화로운 신의 축복이지만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인 프레온 가스가 그랬듯 환경에 막대한 폐해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대로는 결국 퇴출되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면은 저렴한 소재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간단한 친환경 관련 조치를 더해도 소비자가 수용 가능한 가격대를 훌쩍 넘어서 버린다. 유전자 조작으로 병충해에 강한 GMO 면이 나오기 전에는 퇴출 1호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곤충이나 미생물을 퇴치하는 강력한 생물은 수백 종의 박테리아와 공생하는 인간에게도 좋을 리 없다는 점에서 GMO가 완전한 대책은 아니다. 생분해성 PLA(Poly Lactic Acid)나 리오셀(Lyocell) 같은 재생섬유가 대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같은 합섬이 강력한 친수성을 갖춰 면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지속가능 압박이 거세지면 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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