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36)] 손 발가락에 동상이 잘 걸리는 이유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36)] 손 발가락에 동상이 잘 걸리는 이유
  • 안동진 / djdj1959@naver.com
  • 승인 2022.10.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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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추위에 동상 때문에 손가락을 잃기 싫다면 반드시 벙어리 장갑을 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유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삼x의료원 홈페이지에 가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동상에 잘 걸리는 이유에 대해서 심장에서 멀기 때문에 그리고 ‘추위에 노출되는’ 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신체 부위는 발등이나 발뒤꿈치도 예외가 아니다. 발목이나 발등도 손보다는 심장에서 훨씬 더 멀다.

 iStock

하지만 발뒤꿈치나 발등, 발목이 동상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반대로 코나 귀는 동상에 잘 걸리는 부분인데 심장에 가깝다. 의사들이 말하는 ‘추위에 노출되는’ 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옷으로 감쌀 수 없는? 아마 그들이 말하고 싶은 단어는 ‘비표면적이 큰’ 일 것이다. 

동상에 잘 걸리는 손가락, 발가락, 코끝, 귓바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말단부위, 즉 몸에서 돌출된 작은 부분들이다. 이런 부위들은 인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비표면적이 크다. 따라서 다른 신체 부위보다 체온을 더 빨리, 많이 빼앗긴다. 결과적으로 급속 냉각된 그 부위의 혈관을 통해 차가운 피가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고도로 정밀한 인체는 중심체온 유지를 위해 이 부위의 혈관을 축소해 냉기를 차단한다. 불이 났을 때 방화문을 닫아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알고리즘과 같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혈관이 축소된 말단부위는 혈액순환이 나빠지는 동시에 연조직이 얼어붙어 결국 혈액공급이 중단된다. 최종결과는 괴사이다. 인체는 생존을 위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겨울에 손발이 유난히 시린 이유를 얘기하라고 하면 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혈액순환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혈액순환이 나빠져서 손발이 시린 게 아니라 ‘손발이 다른 부위보다 더 차갑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나빠진 것이다. 즉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있다.

섬유에 난데없이 인체 해부생리학과 물리학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그런 것을 모르면 최고의 방한의류를 설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단지 의상의 스타일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의류 본연의 목적인 기능은 물론 착의 감성까지 동시에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자동차가 150년 동안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면적이란 2차원 평면에서 일정 공간을 차지하는 넓이를 말한다. 표면적은 3차원 입체 표면의 면적이다. 초등학교 때 전개도를 그리고 잘라서 육면체를 만들어 본 기억이 날 것이다. 표면적은 어떤 도형의 전개도 면적과 같다. 

체표면적(Body Surface Area)이란 의학에서 인체의 표면을 둘러싼 면적을 의미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표면적은 체표면적, 생물이 아닌 사물은 표면적 그리고 이들의 부피 대비 면적을 비표면적(Specific Surface Area)이라고 한다. 겁먹지 말자. 앞으로 나올 계산들은 초등학교 산수에 불과하다. 

그림을 한번 보자. 한 변이 2m인 꼬마 정육면체의 부피는 8이다. (단위 생략) 꼬마 8개를 오른쪽과 같이 쌓아 어른 정육면체를 만들었다. 이 어른의 부피는 당연히 8x8=64이다. 이번에는 표면적을 따져보자. 꼬마의 표면적은 한 변이 2x2=4 라는 면이 6개이므로 24가 된다. 그렇다면 어른의 표면적은 부피가 그런 것처럼 8배가 될까? 그렇지가 않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면 16x6=96으로 4배가 된다.

이 예로써 부피는 8배로 증가했지만 표면적은 4배가 되어 어떤 3차원 물체의 크기가 커질수록 부피 대비 표면적은 점점 작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수학적,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생리학적으로도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비표면적은 부피가 큰 물체일수록 작고 부피가 작은 물체일수록 크다. 이런 결론은 우리의 직관에 거슬린다. ‘큰 것이 작다고 하고 작은 것이 크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회색빛 뇌세포와 차가운 이성으로 이 생소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쥐가 코끼리보다 더 큰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답은 바로 비표면적이다. 코끼리는 비표면적이 극단적으로 작은 동물이며 쥐는 반대로 비표면적이 극단적으로 큰 동물이다. 지구상에서 비표면적이 가장 작은 동물은 길이가 33m에 몸무게는 125톤이 나가는 대왕고래이다. 

이제 결론을 낼 시간이다. 손가락은 손보다 훨씬 더 작기에 손가락장갑의 체표면적이 벙어리장갑의 체표면적보다 더 크다. 장갑을 만들어 보면 자재 소요량 비교로 즉시 알 수 있다. 체온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는 피부이므로 외기와 접촉하는 표면적이 더 작은 벙어리장갑의 체온 손실이 더 적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멋진 규칙이 있다. 중심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항온동물의 경우, 비표면적이 크면 체온을 뺏기기 쉬운 구조이므로 추운 지방에 살기 어렵다. 반대로 비표면적이 작은 동물 즉, 덩치가 큰 동물이 추운 지방에 살기 적합하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고 추운 북유럽에 사는 백인들이 대개 덩치가 크다. 이를 베르크만의 규칙 ‘Bergman’s Rule’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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