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돈보다 ‘열망·우정’ 향해 마음 가는 대로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돈보다 ‘열망·우정’ 향해 마음 가는 대로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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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는 해프닝’으로 매주, 매월 주간지와 월간지에 꼬박 꼬박 실렸다. 패션이란 장르도, 패션쇼도 대중에게 생소했던 때였다. 연예인처럼 팬레터가 날아들고 또한 ‘무작정 개나리 봇짐(?)’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손일광 선생은 그 ‘무작정 개나리 봇짐’의 주인공으로 디자이너 최복호를 손꼽았다.

손일광 선생은 제대를 앞두고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는 최복호의 편지를 받았다.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골자였다고 한다. 그 편지는 묘하게도 손일광 선생의 뇌리에 박혔는데 아마 서로 ‘4차원적 코드’가 들어맞았을 것으로 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패션을 예술로 승화시켜 ‘고정관념 타파’를 부르짖는 4차원 디자이너 손일광이 철학과를 다니며 목사를 꿈꾸었고 마침내 패션계로 ‘귀화(본인의 극적인 표현)’한 최복호의 멘토가 됐다.
최복호 디자이너는 “편지를 나누면서 패션세계에 이런 분도 있구나, 패션에도 예술을 담아낼수 있구나! 라고 감탄했지요. 손 선생님은 제 정신적 멘토였고 그 분의 영향을 저는 여과없이 받아들였지요”라고 회고했다. 편지를 주고 받던 최복호가 제대 후 어느날 불쑥 ‘무작정 개나리 봇짐’으로 손일광의 ‘의상실 A.D(아방가르드)’로 찾아왔다.

연고도 없고 패션에 대한 기본교육도 받지 못한 최복호의 용감한 시도를 디자이너 손일광은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최복호는 국제복장학원에 입학해 초급단계부터 차근차근 다져갔다. 낮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의상실 A.D에서 쪽잠을 자면서 실습을 했다고 한다. 손일광 선생은 “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격려했다.

“정말 열정적으로 열심히 매달리는 거예요. 매사에 적극적이고 눈망울이 똘망 똘망해서 지식을 속속 받아들이는가 하면 자신의 의사표현도 적극적으로 잘해 선배로서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라며 그 때를 떠올렸다.

전위예술가 ‘정찬승’의 방문
정강자·김구림.·방거지와 인연
밤이면 20명 이상 모임 이어져
의상실 A.D는 ‘제 4집단’ 산실


최복호가 73년도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손일광 선생은 최근 청평에 ‘박물관’을 짓고 있으며 전원과 예술의 어우러짐을 통해 후배들이 쉬어갈수 있는 공간조성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패션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예술장르를 아우르는 ‘삶의 예술가’로서 ‘공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일맥상통하게도 최복호 역시 청도에 문화공간조성을 통해 의상과 예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매진하고 있다. 최복호 디자이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로 “손 선생님은 생각과 예술, 문화가 살아숨쉬는 분입니다. 큰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죠. 개개인의 기량만이 중요시되는 ‘오디션 세대’ 디자이너들은 이해 못할 만큼 멘토로서, 선배로서 이정표를 주시는 분입니다”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제 4집단’ 우연에서 필연으로
대한민국 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은 물론이고 ‘사건’으로까지 불리워진 ‘사집단’ 결성은 의상실A.D를 지나가던 ‘정찬승’이란 인물의 ‘우연한 방문’이 시발점이 됐다. 디자이너 손일광은 홍대출신의 ‘안성공’이 운영하던 곳을 인수해 의상실A.D를 열었는데 지인인 정찬승이 무심코 안성공을 보기위해 들른 것이 발단이 됐다. ‘우연’이 ‘필연’이 될 줄이야.
여기서 잠깐. 기자는 손 선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성공 씨는 어떻게 됐나요?”라고. 손 선생이 답변하기를 “이름처럼 성공 못했어요”란다. 우문현답(?)이다.

향후 사집단의 주요 인물이 된 정찬승은 홍대에서 제일 유명한 전위예술가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있다. 우연히 들른 정찬승과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고 디자이너 손일광과 찰떡 궁합의 사이가 됐다. 주경야독을 하던 청년 최복호 역시 손일광 선생에 이어 정찬승과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정신적, 예술적 영감과 영향을 준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정찬승이 의상실을 찾아오면서 같은 말띠였던 홍대 동기 정강자를 비롯, 친구들과 후배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었다. 당시 암울하고 답답했던 시대상황에서 숨통을 조여오던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예술가들과 학생들에게 의상실A.D는 토론장이자 현실을 잊게하고 꿈을 꾸게한 곳이 됐다. 낮에는 고객들이 찾아오고 밤에는 스무명이 넘는 예술가들로 의상실A.D는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손일광 선생의 소울메이트이자 반쪽인 부인역시 당시 홍대 1학년으로 가게를 찾았다. 또다른 주요 멤버였던 ‘김구림’도 이때 등장한다. 김구림은 서울대 미대를 다녔었고 남영나일론에서 판촉(현재 마케팅)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명 방거지로 통하던 한국 최초 판토마임 극단을 창단한 방태수도 이때 등장한다. 화가, 전위예술가, 무대연출, 연기자, 디자이너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인들이 매일밤 자리를 함께 했다.

손일광 선생은 본인과 함께 중대 연영과 출신인 김희준이 매일밤 ‘술값 담당’이었다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가장 중요한(?)역할’을 담당했다는 자족감이라고 할까. 돈을 벌 것인가? 친구들과 함께 하고싶은 열망을 꿈꿀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은 잠시, 손일광은 ‘친구, 열망’을 향해 ‘마음이 가는 대로’ 방향을 잡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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