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 130년 전 물개 내장으로 만든 투습방수 원단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2)] 130년 전 물개 내장으로 만든 투습방수 원단
  • 안동진 / djdj1959@naver.com
  • 승인 2021.04.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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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극지방에서 고기잡이할 수 있었던 방법,
1890년 발견된 이누이트의 방수 옷에서 해답
물개 내장으로 만들고 기름발라 발수기능까지

시베리아나 툰드라 같은 혹한의 동토에서 야영이나 사냥을 할 때는 물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혹한의 겨울에 물에 빠지는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중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하 10도만 되어도 옷을 입은 채 강물에 빠지면 즉시 물 밖으로 나와 젖은 옷을 벗고 몸을 건조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 십분 내로 저체온증이 엄습해 죽게 된다. 나무 차가운 물 때문에 저체온증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젖은 피부와 옷에서 물이 증발하면서 발생하는 대량의 기화열이 순식간에 체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베리아라도 수온은 영상 3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툰드라의 강은 겨울에는 얼음이 두텁게 얼기 때문에 차가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잘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영하 40~50도의 추위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이트(Inuit)’들은 바다에 접한 곳에 대부분 주거한다. 북빙양에는 해양생물들이 많아 먹을 것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추운 바닷물에는 산소가 많이 포함돼 있어 어종이 풍부하고 덩치가 큰 어류나 고래 같은 해양 동물들이 많이 산다. 따라서 이들은 바다에 생활터전이 있다.

즉, 차가운 바닷물에 빠지거나 물에 젖게 되는 일이 다반사 일 것이다. 북빙양에서 참치를 잡는 현대의 어부들은 물에 젖지 않기 위해 고무나 방수필름이 처리된 화섬으로 만든 완벽한 방수복을 입고 있다. 만약 이누이트가 고무나 화섬으로 만든 방수복이 발명되기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1890년 발견돼 알래스카 앵커리지 박물관에 전시된 방수 옷.
1890년 발견돼 알래스카 앵커리지 박물관에 전시된 방수 옷.

생존에 관련된 일이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고기잡이는커녕 바닷가에 살 수조차 없다. 그들은 지금도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물개나 바다사자 같은 해양동물들을 잡아 생활을 영위한다.

완벽하게 방수되는 옷은 20세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일론이 발명된 때가 1935년이다. 공식적인 방수 자켓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에 면으로 만든 파일럿 자켓으로 영국에서 발명됐다. 그 소재가 최초의 방수원단인 ‘벤타일(Ventile)’이다.

그나마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고 물에 젖으면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진다. 다만 생존시간을 벌게 해주는 목적일 뿐 이 옷을 입고 어떤 작업을 할 수는 없다. 이누이트의 방한의류는 대게 동물 가죽이므로 방수가 될 리 없다. 겉옷의 방수가 어렵다면 내의를 방수 처리된 것으로 입으면 몸이 젖지 않아 목숨을 위협받지 않게 된다. 

방수를 위한 내의는 얇아야 하고 충분히 질기지만 물에 젖지 말아야 하고 습기에 의해 너무 부드러워져도 안된다. 피부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또 방수가 되면서 투습도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기성이 없어 금방 땀 때문에 안쪽으로부터 젖게 되기 때문이다. 몹시 까다로운 이런 조건을 만족할만한 소재가 20세기 이전에 있을 수 있을까?

동물의 창자(Intestine)는 피부와 마찬가지로 섬유 단백질로 돼 있다. 콜라겐이 대표적인 단백질 섬유다. 콜라겐 티슈 파이버(tissue fiber)인 것이다. 동물의 피부는 말할 것도 없이 투습방수다. 단, 살아 있는 동물인 경우다. 건조된 가죽은 방수가 되지 않는다.

즉, 죽은 피부는 방수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증기나 땀을 배출해야 하는 피부와 달리 동물의 내장은 언제나 액체 상태인 내용물을 처리하는 곳이므로 우수한 방수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건조 후에도 방수 기능이 건재하다.

극도로 가는 섬유를 적층해 만든 나노 멤브레인(Nano Membrane)과 비슷한 구조인 것이다. 순대를 생각하면 된다. 섬유들이 층층이 쌓아 올려져 방수가 되는 구조에서는 섬유가 가늘수록 더 얇은 원단을 만들 수 있다.

섬유가 충분히 가늘지 않은데 방수가 되려면 두꺼운 원단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간의 머리카락 굵기인 섬유를 적층해 방수원단을 만들려면 두께가 30cm는 돼야 한다. 따라서 내장은 얇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뛰어난 투습방수 원단이 된다.

왼쪽 사진은 1890년 알래스카에서 발견한 물개 창자로 만든 방수 옷이다. 얇고 투명한 물개 내장을 말려 오리나무 그을음을 쬐었다. 너무 얇고 부드러워 형태가 고정되지 않아 뻣뻣한 느낌(stiff touch)을 내기 위해서다. 현대 원단 같으면 수지(resin)처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무리로 표면에 기름을 발라 발수기능까지 갖췄다. 대부분의 기름은 물보다 표면장력이 낮아 발수효과가 있다. 

이누이트는 어떻게 이런 소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1000년 동안 순대를 먹었어도 우리는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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