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14)] 폭발하는 당구공과 최초의 인조섬유 ‘레이온’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14)] 폭발하는 당구공과 최초의 인조섬유 ‘레이온’
  • 안동진 / djdj1959@naver.com
  • 승인 2021.10.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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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샷으로 당구 공이 폭발할 수도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 당구공이 그랬다. 셀룰로이드는 1856년에 발명되었다. 개발 목적은 당구게임의 급성장과 상아의 공급감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구공은 균일한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부 밀도가 일정하여 어떤 곳이 충돌하더라도 균일하게 반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요구하는 모든 성능을 만족하는 유일한 재료는 최상급 상아였지만 코끼리 사냥과 상아수출은 점점 금지 추세로 가고 있었다. 

수요는 늘고 공급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상아를 대체할 재료를 찾기 위해 당구 용품 회사인 펠란(Phelan)과 브런즈윅(Brunswick Balke Collender)는 그것을 발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10,000(오늘날 돈으로 수십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셀룰로이드는 그 이름에서 짐작되듯 셀룰로오스로부터 유래했으며 셀룰로이드의 원료인 니트로 셀룰로오스는 높은 가연성을 가진 화약의 일종으로 면화약(guncotton)이라고도 불린다. 정면 충돌이 뇌관으로 작용하여 폭발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면은 셀룰로오스 98%로 이루어진 섬유이다. 현대의 탁구공도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다. 이들 모두는 친척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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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재료를 화학적으로 형태를 바꾼 최초의 섬유
인류 최초의 인조섬유는 사실 레이온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조’는 아니지만 천연재료를 화학적으로 형태를 바꾼 ‘최초의 섬유’ 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천연섬유는 그 자체로 섬유 형태이다. 실로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학섬유는 가소성 플라스틱이므로 언제든 원하는 형태로 바꾸면 된다. 나무는 면이나 마와 동일한 셀룰로오스 기반이지만 그대로는 방적 가능한 섬유 형태가 아니어서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고 다시 이를 녹인 다음 섬유로 뽑아야 한다. 

레이온은 면과 동일한 성분인 셀룰로오스이지만 나무에서 비롯되었으며 나무는 수지인 리그닌(Lignin)을 포함한 다양한 불순물을 담고 있으므로 거의 순수한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진 면과 다르다. 나무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100% 순수한 셀룰로오스로 만든 것이 펄프이다. 

인체 무해한 레이온 개발까지 150여년
문제는 펄프가 면과는 달리 방적 가능한 섬유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루에 가까운 입자를 길다란 섬유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국수 제조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국수를 만들려면 밀가루에 물을 첨가하여 반죽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죽이 되지 않으면 국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가루가 반죽이 되지는 않는다. 

밀가루에는 글루텐(Gluten)이라는 끈적이는 성분이 있어서 가능하다. 펄프는 순수한 셀룰로오스로 접착력이 전혀 없어 그대로는 반죽을 만들 수 없다. 방법은 셀룰로이드처럼 액체 상태가 되도록 녹이는 것이다. 이 끈적한 액체로 당구공을 만드는 대신 가느다란 관을 통과시켜 섬유로 뽑아낸 것이 레이온이다. 

동물의 위에서도 소화되지 않는 셀룰로오스는 녹이기 어려운 천연고분자이다. 결국 다양한 용매와 케미컬을 이용한 수십 차례의 시도 끝에 몇몇 종류의 레이온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 대중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최초의 것이 이황화탄소를 사용한 비스코스(Viscose)이다. 질산을 사용하지 않아 폭발은 피했지만 이황화탄소는 인간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위험한 독극물이다. 인체에 무해한 레이온의 탄생은 그로부터 150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2013년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가 된 브런즈윅(Brunswick Balke Collender)社의 상아 당구공 이미지. 박스 뚜껑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당구공이 충분히 단단해질 때까지 최소 일주일간은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쓰여 있다.
2013년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가 된 브런즈윅(Brunswick Balke Collender)社의 상아 당구공 이미지. 박스 뚜껑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당구공이 충분히 단단해질 때까지 최소 일주일간은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쓰여 있다.

상반된 야누스의 얼굴
레이온은 19세기 중반에 처음 나왔지만 진정한 ‘인조 화학섬유는 그로부터 8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레이온은 처음에는 인조 실크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물성 섬유인 실크보다는 면에 가까운 성분이다. 정확하게는 면과 분자의 크기만 다를 뿐, 100% 동일한 성분이다. 실크와는 사실 거리가 멀다. 단지 실크처럼 표면이 매끄러워 광택이 비슷한 것뿐이다. 따라서 모든 물성은 면과 같거나 유사하다. 

1924년에 미국 상무부는 특유의 광택을 반영하여 빛을 뿜어낸다는 의미로 Ray와 Cotton의 마지막 두 철자인 on을 결합하여 Rayon이라고 하였다. 인조 실크 보다는 ‘빛나는 면’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다. 하지만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외관과 장섬유라는 사실, 특유의 Drape성은 실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드라이 크리닝(Dry cleaning) 해야 하는 것도 실크와 비슷하다. 레이온은 내면과 외모가 전혀 다른 두 얼굴의 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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